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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언젠가 어느 신문에 난 조용헌 칼럼 '격세유전'이란 글을 읽었다. 조용헌은 그의 이 글에서 부모로부터 가장 직접적으로 유전되는 게 '성격과 질병'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성격도 부모님으로부터 오롯이 물려받은 듯하여 조용헌의 이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친정어머닌 우리고장 노은면에서 유명한 한학자의 따님인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교사상 때문인가 보다. 평소 옛것을 매우 숭상해온 분이다. 또한 천성이 긍정적이고 정이 많은 분이다. 어디 이뿐이랴. 외할아버지 역시 남에게 모진 말씀 한마디 못하는 무른 성품이었다. 외할머니 또한 한학에 능하고 평소 가야금과 난을 치기도 했다. 평생을 정갈한 마음으로 살아온 분이다. 솔직히 친정아버지가 이북 함흥서 1·4 후퇴 때 홀로 남하한 분이라서 친가 쪽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생전 아버지 말씀을 빌리자면 조부모 두 분 모두 당시 고등 교육을 받은 분이란다. 그래 이성과 지성이 남달랐다고 했다. 특히 친 할아버지는 풍류를 즐겼고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품이란다. 친할머니 역시 성품이 활달하고 여장부였단다.

이 글에서 양가 조부모님을 언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조용헌은 그의 글에서 질병은 부모 대에서 자식에게 곧바로 유전 된단다. 이 때 몇 대 건너뛰어서 그 형질이 유전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것이 격세 유전(隔世遺傳)인데 예를 들면 질병 말고도 증조부가 유명한 학자였다면 그 증손자 대(代)에 아주 공부 잘하는 후손이 나올 수 있단다. 조상이 마작을 잘하는 노름꾼이었으면 후손 가운데 한 명은 카지노 딜러로 이름을 날린다고 했다.

이로보아 핏줄은 속일 수 없나보다. 특히 그 집안에 특출한 인물이 나오면 그 사람의 증조부 대나 고조부 대에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족보를 추적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외가, 친가 모두 증조부모님, 고조부모님 공덕이 100년의 시간을 거쳐 격세유전 되어 그 집안 손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란다.

조용헌이 주목하는 것은 조상대의 업보(業報)다. 조상이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돈을 벌었던 집안은 3-4대 후손이 그 대가로 하는 일마다 마(魔)가 끼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고 했다. 조상의 악업(惡業)이 격세유전 된 사례란다. 이 내용에선 진정 선한 마음으로 인생을 잘살아야겠다는 결심을 새삼 다져본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로봇이 사람 일을 대행하며 우주선이 우주를 탐색하는 현대에 조용헌의 이 말은 구세대 케케묵은 발상으로 치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에 공감이 깊다. 무엇으로든 타인을 해코지 한 사람치고 당장은 그 죄의 대가를 안 받아도 자손의 앞날이 좋지 않을 것은 불보듯 뻔해서다. 그는 혼사를 할 때 무엇보다 사돈 집안 조상이 선대에 쌓은 높은 공덕을 보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하긴 필자에게도 아직 미혼인 두 딸이 있다. 나중에 딸아이들이 결혼을 할 때 일이다. 사돈집 조상이 타인 가슴에 비수를 꽂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사윗감이 아무리 능력 있고 인물이 훤칠해도 결혼만큼은 고려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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