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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바다를 찾아도 좀체 뱃고동 소리를 듣기 어렵다. 예전처럼 큰 소리로 들려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님 태운 배를 향해 손수건을 흔들던 순정도 빛이 바랬다. 요즘은 사랑 때문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순애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젊은 날엔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만으로도 눈가를 적셨으련만, 이런 감수성도 무뎌진지 오래다.

이는 어린 날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어려서 외가 뒷산에서 밤새도록 울어대던 소쩍새 소리는 왜 그리 구슬픈지…. 겨우 6살짜리 소녀가 소쩍새의 구성진 울음소리를 어찌 가슴으로 들을 수 있었으랴. 하지만 필자는 유달랐나보다. 어린 시절 찾았던 외가다. 이때 막내 이모가 없으면 소쩍새 울음소리마저 슬프게 다가왔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이모는 학교만 파하면 눈깔사탕, 꽃핀 등을 한아름씩 사갖고 오곤 했다. 그런 이모가 참으로 좋았다. 하지만 이모가 학교 졸업 후 도회지로 유학을 갔다. 이 때 이미 이모로 하여금 그리움과 기다림을 일찍 체득한 셈이다.

어찌 막내 이모뿐이랴. 큰 이모, 외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한껏 한 몸에 받고 지냈다. 그래서인지 잠시만 곁에 외가 식구가 없으면 보채고 까닭 없이 울기 예사였단다. 오죽하면 별명이 '울보 공주'였을까. 큰 이모가 외출이라도 서두를 양이면 입고 있는 두루마기에 나도 싸갖고 함께 데려가라고 울며불며 매달리기 예사였다. 이런 내게 외할머니는 어머니 못지않게 큰 사랑을 줬다.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라도 다치면 할머니는 종일 나를 업고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

훗날 자라서는 상가(喪家) 집 앞을 무심히 지나치지 못했다. 상가에서 들려오는 상주(喪主) 울음소리에 절로 눈물이 흘러서이다. 요즘은 상(喪)을 치를 때도 장례식장에서 치러서인가. 골목길 상가에서 들려오던 상주의 애간장을 도려내는 울음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젊어서는 남이 흘리는 눈물에도 덩달아 눈가를 적시던 필자였다. 그러나 세월 탓이런가. 날이 갈수록 눈물이 메마르는 듯하다. 그야말로 얼굴엔 메스라곤 안대어서 쌍꺼풀 수술도 물론 안했다. 하여 눈물샘을 막아버린 것도 아닐진대. 왜 이리 가뭄에 논바닥 마르듯 눈물조차 바짝 메말랐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는 예전보다 풍부했던 감성이 습윤(濕潤)을 잃은 탓일 것이다. 무엇보다 가슴이 냉랭해져서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이젠 타인 울음소리를 들어도 별반 감흥이 없다.

리처드슨 작作 대하소설인 『파멜라』에서 주인공 파멜라는 자신이 흘리는 눈물 중 그 맛이 시큼하면 사랑의 맛이요, 짭짤하면 슬픔에서 우러난 눈물로 분간 할 수 있다는 독백 내용을 인상 깊게 읽은 적 있다. 돌이켜보니 젊은 날 짜디짠 눈물보다, 시큼한 맛의 눈물도 자주 흘린 듯하다. 목숨처럼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은 가슴이 얼얼하도록 아파와 수 년 간을 가슴앓이 하지 않았던가.

언젠가 교황이 흘리는 눈물을 본적 있다. 이 각박한 세태를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슬퍼하는 하느님을 대신하여 흘리는 눈물인 듯 했다. 이 때 모처럼 인간 본연의 순수한 눈물을 대하는 느낌이어서 매우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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