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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순간적으로 위급할 때 우린 어머니를 먼저 떠올린다. 이때 "아이구머니"라는 감탄사를 발설하곤 한다. 이 말은 '아이구와 어머니'를 축약 시킨 표현이다. 어머니는 언제 어디에서 떠올려도 인자하고 따뜻한 사랑을 지닌 분이다. 이로보아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자애스런 어머니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애착심이 심리 저변에 짙게 내재돼 있어서인가보다. 요즘도 다급한 상황일 때 얼결에 튀어나오는 말이 "아이구머니"이다.

왜? 이런 마음이 어머니에게만 편향 되었을까?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이구버지"는 여간해 입 밖에 내지 않잖은가. 하긴 유행가조차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실 예로 현인 노래인 <비 내리는 고모령> 가사만 해도 그렇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는 /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와 이미자의 <지평선은 말이 없다> 등에서도 '어디에 계시온지 보고픈 어머님' 이라고 어머니에 관한 가사가 등장 한다. 이렇듯 대중가요 가사만 살펴봐도 고향과 부모를 떠올릴 때면 으레 어머니 일변도一邊倒이다. 반면 아버지가 나오는 유행가는 별로 많지 않다. 한정무 노래 <꿈에 본 내고향>인 경우 '내 부모 내형제'라는 표현으로 미뤄 봐도 아버지는 도매금으로 표현될 뿐이다.

이게 아니어도 현대는 집안에서 아버지 권위가 실종됐다고 한다. 경제권도 아내에게 빼앗기고 삶에 쫓겨 자식들을 위한 밥상머리 교육도 예전처럼 할 수 없다. 하지만 친정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은연중 딸들인 우리들에게 남성편향인 아니무스 Animus 심상이 드리워지는 가정교육을 시켰다. 당시 집안에 부재중인 아버지였다. 그럼에도 평소 아버진 가장이자 대들보라는 인식 때문인지 어머니는 부권(父權) 옹호를 철저히 실천한 분이다. 그런 어머니였기에 지난날 딸들인 우리들에게 엄한 가정교육 중 하나가 결혼하면 남편 아침밥 챙겨주기를 우선적으로 꼽았다. "남자들은 집안에서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음식을 먹어야 속도 든든하여 밖에 나가 일도 잘하는 법이란다"라는 말을 누누이 들려주었던 어머니다. 어린 시절부터 귀가 젖도록 들어온 어머니 말씀 때문일까. 결혼해서 아무리 부부 싸움을 심하게 했어도 남편 밥상만큼은 잊지 않고 차려주곤 하였다.

어디 이뿐이랴. 지난날 교육 사업을 할 때도 김치, 밑반찬 등은 직접 요리하였다. 여태껏 단 한 번도 파출부에게 집안일을 맡기거나 시중에서 파는 반찬을 사다가 밥상 위에 올린 적이 없다. 어찌 보면 바쁜 일상에서 지지고 볶고 삶는 음식을 장만한다는 일은 비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치를 담그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밑반찬 등을 직접 요리했다.

흔히 남자들은 나이 들면 위(胃)를 위해 산다고 말한다. 그래서인가. 남자들은 걸핏하면 아내 눈치 보는 말로, "잘못하면 늘그막에 마누라에게 밥 못 얻어먹을 수 있다"라며 제법 철든 말로 자신을 보신(保身)하는 일에 급급해 한다. 하긴 어느 책자에서 읽은 내용을 보면 아내에게 미움 받는 남자는 수명이 감소한단다. 왜냐하면 남편이 밉다보니 아내가 음식을 요리할 때 상한 마음으로 만들었기에 그런 음식엔 좋은 기운이 없어서 그렇단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내용은 아닐지라도 일정부분 긍정이 가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아내에게 잘하면 다음날 반찬 수가 달라진다는 말만 떠올려 봐도 이 내용에 고개가 끄덕여져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간 삶에 본능이자 생명 유지인 음식 섭취만큼은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이다. 인간이 며칠만 곡기를 끊으면 건강과 생명을 잃잖은가. 나이 탓이런가. 날이 갈수록 가장의 자리가 무척 크게 다가온다. 그래 그동안 가끔 힘들다고 어느 땐 귀찮다고 음식점에 배달 음식을 시켜 가족에게 먹이곤 했다. 이젠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끼니마다 정성껏 밥상을 차리는 주부 역할에 최선을 다할까 한다. 특히 남편의 위(胃)를 위해서 정성을 쏟아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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