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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성격이 운명을 지배한다는 말이 맞는 성 싶다. 젊은 날 습관이 된 매사 완벽주의 지향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어서인지 더욱 이 말에 공감이 깊다. 마음먹은 일은 꼭 성취해야만 하고 입 밖에 뱉은 말은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 성품이 그것이다.

사노라면 헛발질을 비롯, 가끔 흰소리도 하고, 실수도 하며 사는 게 인생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껏 이런 일을 금기시 해왔으며, 절제와 규범적 삶을 고집해 왔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못하는 탓에 스스로를 닦달하기 예사였다. 이런 성격은 지난 시간 악착같이 앞만 보며 내달리도록 나를 몰아세웠다. 무엇을 얻고자 그토록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렸을까. 걸음을 멈추고 이제라도 여유롭게 살고자 했을 땐, 그동안 과속의 삶이 안겨준 달갑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날 교육 사업을 하느라 별 보고 나갔다 별보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일 년 내내 이런 삶이 지속되다보니 사계절의 정취 또한 느낄 겨를이 없었다. 어느 사이 세 딸들의 바지 단이 껑충 짧아지기 시작했고, 하루가 다르게 신발 치수가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것조차 미처 챙길 틈이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딸아이들과 반비례하여 나의 심신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다. 처녀 때 비하여 체중이 십 키로 가까이 불어나기도 했다. 변명 같지만 몸매를 관리하고 운동을 일상화 할 정신이 없었다. 눈만 뜨면 일에 미쳐서 그야말로 거울 한번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마저 아껴야 했다. 이 나이 이르도록 그 흔한 피부 맛사지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이런 형국이니 나 자신을 제대로 응시하는 일엔 소홀했다. 아무리 현대가 백세 시대라고 말하지만, 의학적으로 노인을 규정하는 연령이 육십 오 세라고 한다. 의료 통계상 만성질환이나 암 발생은 육십 대 중반부터 급속히 증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통계도 무색하다. 실은 오십대부터 현저히 암, 당뇨, 고혈압 등에 시달리는 현대인이란다. 그 통계에 딱 들어맞게 나 역시 이 질병 행렬에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수년전, 갑자기 찾아온 허리 디스크, 담낭 종양 제거술이 그것이었다. 앞 만보며 내달린 '과속 증후군'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어려서 외가에 가면 외할아버지가 몰던 달구지를 탔던 경험이 있다. 황소가 이끄는 달구지는 시골 자갈길을 덜컹거리며 한참을 지난 후에야 논, 밭에 이를 수 있었다. 그 때 달구지에 앉아서 주위의 경치에 흠뻑 취했던 기억이 새롭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을 지나, 파랗게 모가 자라나는 논길을 따라서 달구지가 달릴 때 바라본 주위의 자연 풍광은 어린 눈에도 경이롭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특히 황소가 달구지를 매달고 걸을 때마다 소똥이 덕지덕지 묻은 탐스러운 소 엉덩이의 움직임은 어린 마음에도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몇 년 전 이탈리아를 여행 할 때 일이다. 가이드가 로마 시내를 자동차로 여행하길 권유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도보로 관광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로마 곳곳에 자리한 유적지 및 유물들을 세세히 살펴보고 싶은 욕심에 의해서였다. 덕분에 자동차 여행보다 더 한가롭게 로마 시내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이런 마음에서 어린 날 달구지를 탔던 옛 추억을 되살려서 그 길을 찾아 자동차를 타고 달려봤다. 하지만 산천이 변한 탓인지 그 시절 보아왔던 정경이 아니었다.

요즘 달구지를 타고 여행을 가거나 볼일을 보러 다니는 사람은 눈 씻고 살펴봐도 없다. 자동차는 물론이려니와 고속전철을 비롯, 국내에도 비행기가 교통수단이 된 지 오래다. 무엇이든 신속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태다. 하지만 나이들 수록 시간과의 싸움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할 것이다. 중년 및 노년에 찾아온 질병은 급히 내디뎠던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삶을 한번쯤 뒤돌아보라는 쉼표가 아니던가. 이제라도 고속전철, 여객기를 선호하기보다는 마음의 달구지라도 타고서 유유자적 인생의 여정을 떠날 준비를 마련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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