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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어젯밤에 소리 없이 눈발이 흩날렸다. 커피를 마시며 하릴없이 아파트 정원수마다 소복이 쌓인 흰 눈을 바라본다. 이 때 문득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실비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새하얗게 펼쳐진 설경 위로 선홍색 천이 뒤덮인 시신이 실려 나온다. 카메라는 이어서 실비아의 생전 모습인 전날 밤 행적을 담담하게 훑었다. 우유와 말랑한 빵을 잠든 아이들 머리맡에 조심스레 놓아두는 실비아의 모습은 왠지 눈빛이 애절하다. 이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창틈과 문틈을 잿빛 테이프로 꼼꼼히 틀어막고 가스 밸브를 연다. 그리곤 그토록 남편의 재능을 질투하고 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느꼈던 실비아는 가스 오븐에 머리를 집어넣는다.

가스 오븐에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미국 여류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다. 그녀는 결국 가스에 중독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실비아는 당시 계관 시인이었던 영국 시인 테드 휴즈와 열렬한 사랑 끝에 결혼했으나 남편의 바람기로 말미암아 파경을 맞이했다. 테드 휴즈의 외도가 그녀를 한껏 나락 끝으로 몰아세웠던 것이다. 남편이 실비아 자신보다 월등하리만치 얻은 문학적 성취에 의한 열등감 및 사랑에 대한 배신감은 훗날 대중들에게 실비아의 전설을 재생산하게 하였으며 그것을 추인追認케 하는데 일조 했다.

이 영화 인트로(intro)부분에 나오는 서시가 그녀의 짧은 생을 한껏 압축 시켜 인상 깊다. '가끔씩 나는 나무를 꿈꾼다/ 내 인생의 나뭇가지 하나는 결혼 할 남자/ 거기 달린 잎들은 아이들이다/ 다른 가지는 작가로서의 내 미래/ 거기 달린 잎은 나의 시다< 중략>'라는 그녀의 시어를 떠올리노라니 나 역시 지난날 삶 속에 '목적'이라는 한그루 나무를 심었던 게 상기된다. 그 나무는 마치 하늘의 별과 같았다. 매일이다시피 그 나무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나는 그동안 예까지 달려왔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봄이면 연두색 새순을 터뜨리고, 여름이면 푸른 잎을 활짝 피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가을이면 탐스러운 열매를 자랑하는 한 그루 내 마음의 나무다. 이 마음의 나뭇가지에 부와 명예라는 탐스러운 열매를 비롯, 삶의 평안과 행복이라는 결실을 소망하기도 했다. 또한 문인으로서 불멸의 명작을 단 한 편이라도 창작하여 그 나무에 자랑스레 매달아두고 싶은 욕심이 전부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오로지 내 가슴 속에 깊이 뿌리내린 마음의 나무를 가꾸는 일에 지난 시간 전력을 다한 듯하다.

여류 시인 실비아도 자신에게 닥친 불운과 삶의 고통을 조금만 인내하고 맞서 싸우는 의지와 용기를 지녔더라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불행한 일은 없었을 터, 그의 타고난 재능과 청춘이 참으로 아깝다. 그녀가 관점을 돌려 눈앞에 놓인 삶의 진흙탕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아 자신만의 별을 찾는 여유를 지녔더라면 오늘날 실비아는 어찌됐을까· 아마도 대중들은 그의 천재성에서 우러나온 명작을 수없이 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 내 마음의 나무가 뿌리를 굳건히 내리기까지 나의 지난 삶은 유대인들의 상징인 '사브라'와 흡사했다. 건조하여 물 한 방울 머금을 수 없는 뙤약볕이 작렬하는 사막에서 피워 올린 선인장 꽃 사브라가 아니던가. 남편의 세 번 사업 실패, 갑자기 잃은 건강, 이보다 더 힘든 상황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이러한 삶의 역경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않았다. 마치 선인장 꽃 사브라처럼 온갖 악조건을 꿋꿋이 이겨냈다. 그리곤 나의 별이 된 마음의 나무를 튼실하게 자라도록 물과 거름을 주는 일에 충실했다. 이제 삶의 장애물을 물리치고 허리 좀 펼만하니 코로나19가 족쇄로 등장했다. 하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것이 안겨주는 두려움도 이겨내련다. 내 마음의 나무를 풍요롭게 성장시키기 위해 다시금 뜨거운 열정으로 불꽃같은 삶을 꽃피울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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