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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요즘 귀차니즘이 됐다. 설거지도 미룬 채 침대 위에서 빈둥거리기 예사다. 심지어 전화 받는 일조차 성가시다. 스마트폰이 수없이 울려도 못들은 체 할 때도 많다.

이럴 때마다 언젠가 신문 기사에서 읽은 내용에 공감이 깊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몸이 컨디션이 안 좋으면 온종일 활력이 떨어질 징조란다. 이 현상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게 한단다. 하긴 자신 심신이 편안해야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있다. 요즘 내가 이런 형국에 처한 것은 불면증에 시달려서다. 불면은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자못 크다. 밤잠을 설치면 손끝하나 까딱하기조차 싫을만큼 무기력 해지잖은가.

더구나 병석에 누운 친정어머니를 봉양 하려니 나도 모르게 심신이 지친다. 그러나 시한부나 다름없는 어머니이기에 마음을 고쳐먹곤 한다. 어제는 입맛 없어 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사과, 배, 무, 오이, 당근 등을 얇게 저며 물김치를 담아 드렸다. 식사 시간에 그것을 차려 드리자, 물김치 한 사발을 게 눈 감추듯 한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자 왠지 코끝이 찡했다.

그 모습에 문득 어린 날 일이 뇌리를 스친다. 어머니는 비개인 어느 여름 날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너희들이 나의 무지개다."라고 했다. 당시엔 그 말뜻을 쉽사리 이해 못했다. 이즈막 이 말을 상기想起하자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비로소 지난날 어머니 말씀을 깨닫잖은가. 이 뿐만이 아니다. 이 나이 이르도록 곁에 친정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다는 게 큰 행복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는 시간이 있었다.

며칠 전 친구랑 전화 통화를 할 때 일이다. 친구는, "친정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게 큰 복인 줄 알아라."라는 친구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한편 '내 몸 힘들다고 어머니 봉양 하는 것에 소홀해 하지 않았나' 자신을 돌아봤다. 어머닌 우리를 희생과 헌신으로 양육했다. 밤에 열이라도 나면 등에 업고 십 리 길도 마다않고 맨발로 뛰어서 병원 문을 두드렸다. 당신 자신은 거친 음식을 먹어도 자식 입에는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였다. 당신은 헐벗어도 자식들만큼은 남 앞에 꽃처럼 보이게 하려고 손수 옷감으로 밤새 재봉질 하여 옷을 지어 입혔다.

낳아주고 길러준 가없는 은혜는 물론이려니와, 이렇듯 온몸으로 가난과 맞서며 자식을 위하여 당신 몸 사리지 않고 희생한 어머니 아닌가. 이런 어머니 은공을 그 무엇으로 다 갚으리오.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누구나 희망의 상징인 무지개가 가슴에 뜨기를 바람 한다. 새해엔 필자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무지개는 따로 있다. 이는 친정어머니의 무병장수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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