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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언젠가 텔레비전 매체에 등장한 일명 선풍기 아줌마 이야기다. 화면 속 여인 얼굴은 마치 영화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야수 모습과 흡사했다. 여인은 주름살을 없애기 위하여 자신 얼굴에 스스로 식용유를 주입했다고 한다. 이후 자기 얼굴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성형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급기야 중독에 이르렀다.

그녀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았더라면 본인이 지닌 참 모습을 잃지는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지나친 욕심은 생명마저 집어삼킨다고 했다. 미에 대한 과욕이 원형적 미를 삼켜버리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이 필요성은 여성에게만 있는 것인가. 아니다. 남성에게도 그 아름다움은 분명코 있다.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려는 노력, 그 모습이 남성적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여인은 아름다움을 돈으로 만들지만, 남성은 행동으로 보인다. 포용력과 이해력, 그리고 성취를 위한 불굴의 자세 이것이 남성이 지닌 매력이다. 또 있다. 가슴에 정이 그득한 남자라면 더욱 멋있다.

수년 전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겪은 일이다. 어느 봄 날 음식 쓰레기를 쓰레기통 투입구에 넣으려는 찰나, 누군가 황급히 뛰어오며 손사래를 친다. 자세히 보니 허름한 옷차림을 한 노년 남성이다. 한 손엔 플라스틱 그릇을 들고 저만치서 헐레벌떡 뛰어온다. 영문을 몰라 하던 행동을 잠시 멈추고 있을 때다.

"아주머니! 음식 쓰레기 저를 주실 수 없는지요?" 하면서 불쑥 플라스틱 그릇을 내 앞에 내민다. 엉겁결에 손에 들린 음식물 쓰레기를 남자가 내민 플라스틱 그릇에 부었다. 그러자 그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 언행이 의아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연유를 물었다. 이 물음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제가 일하는 공사장 빈 터에 누군가 개를 묶어놓았는데 제대로 돌보지 않아 비쩍 말랐습니다. 그래 강아지 밥을 챙겨주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그 남자 말을 듣고 보니 다소 의혹이 풀렸다. 그는 곧이어 말을 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파트 단지 음식 쓰레기 통 곁을 지킨단다. 강아지에게 줄 사료 살 돈이 없어 궁여지책 끝에 생각해 낸 일이라고 했다. 그리곤 주민들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자신이 받아서 강아지에게 갖다 준다고 하였다.

이토록 강아지를 돌보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단다. 그 강아지가 자신만 보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모습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일찍 아내와 사별했다고 했다. 홀로 힘겹게 키운 자식들과 벌써 몇 년 째 소식마저 끊겼단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반기는 건 오직 강아지뿐이란다. 금수禽獸인 강아지도 저를 돌보고 아껴주는 사람은 용케 알아본다고 했다.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자신이 힘든 일을 하면서도 그 강아지만 떠올리면 온몸에 힘이 절로 솟는단다. 또한 뼈저린 고독과 고립감을 그 강아지를 보며 달랜다고 했다.

하긴 나이 들면 누구나 고독하다. 더구나 배우자마저 곁에 없으니 뼈저린 외로움을 어찌 말로 이루 형언할 수 있으랴. 그날, 강아지 목에 걸릴 수 있다며 음식물 쓰레기에서 닭 뼈를 고르는 가슴 따뜻한 남자였다. 사람이 진정 아름다울 땐 가슴에 온기를 지닐 때다. 겉만 번지르르 하면 무엇 하나. 인간성이 냉랭하면 곁을 주기가 매우 어렵다. 더구나 나이 탓인지 따뜻한 인간적인 정을 지닌 사람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호감을 느낀다.

사람마다 각자 지닌 개성과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매력 있는 남성에겐 용기가 있다. 호감이 가는 여성에겐 교양 및 덕이 있어 기품이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하여도 여성과 남성의 공통적인 아름다움은 인간성이다. 생명을 중시하는 마음 따순 지난날 그 남자의 모습이 요즘 따라 부쩍 자주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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