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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평소 하늘 높이 차올라 행복이란 그물망에 걸리길 원했다. 이는 먼 곳에 존재하는 행복을 손아귀에 넣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고루한 생각은 나만의 경우이고, 눈을 돌려보면 주위에 지천인 게 소소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삶을 살며 크나큰 행복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자유로움을 한껏 만끽할 때가 아닐까 한다. 자유를 원하고 구속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어서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지인이 코로나19로 운동 부족을 호소하며 매일 시간을 정하여 자신과 함께 마을 뒷산을 오르자고 권유한다. 그녀의 말에 나는 쉽사리 답을 못줬다. 왜냐하면 하루에 주어진 시간의 일부를 그로 말미암아 속박 당하는 듯해서다.

물론, 건강해지려면 매일이다시피 시간을 정해놓고 운동을 하는 게 지혜다. 하지만 나는 타인과의 약속으로 인해 나의 자유로움이 침해당하는 게 왠지 불편하다. 더하여 그 시간을 위하여 또 다른 중요한 일들을 포기해야 하는 결단력도 부족한 편이다. 무엇보다 타인과 산에 오를 시간을 정하면 그 시간을 꼭 지켜야 하는 나의 성격 탓에 스트레스에 시달릴게 불 보듯 뻔해서다.

이렇듯 자유를 논하노라니 지난 가을 호숫가 수변水邊 근처에 심어진 배추가 문득 떠오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랗고 싱싱한 이파리가 가을 바람에 너풀너풀 춤을 추며 싱싱한 모습으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던 배추였다. 그러나 며칠 후 다시 호숫가를 찾았을 땐 예전 상태가 아니었다. 배추밭 배추 포기마다 지푸라기가 몇 겹씩 동여매져 잔뜩 잎을 오므리고 있는 모양새다. 아마도 밭주인이 배추 속을 꼭 차게 하기 위하여 꽁꽁 동여맨 듯하다. 그것을 본 순간, 갑자기 나의 전신이 마치 동아줄에 친친 감긴 듯한 갑갑함을 느꼈다.

지난 가을 따사로운 햇볕과 불어오는 소슬바람을 온 이파리로 흡인하며 푸른 하늘을 향해 온몸을 활짝 펼친 채 나날이 생장하던 배추가 아니던가. 그런 배추를 인간의 이기심에 의하여 숨통을 죈듯하여 왠지 안쓰러웠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 역시 마트나 시장에서 배추를 고를 때마다 배춧잎이 시퍼렇거나, 벌레가 갉아먹은 것을 피하곤 했다. 심지어는 황금색으로 속이 꽉 찬 배추를 선호한 게 사실이다. 이런 배추는 연하고 식감이 좋다는 생각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이파리가 시퍼런 것은 다소 억세어 식감은 떨어지나 가으내 햇볕을 오롯이 머금고 자랐기에 어찌 보면 영양가가 배가倍加된 배추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나는 생장의 자유를 박탈당했던 노랗고 연한 잎이 전부인 속이 꽉 찬 배추만 골랐던 것이다.

이로보아 인간의 물리적인 힘에 의하여 자연스레 생장할 자유를 빼앗긴 배추다. 배추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만물이 자유를 빼앗기면 실성實性을 잃기 십상이다. 푸른 하늘 높이 차오르던 새가 날지 못하고 새장에 갇히면 얼마나 답답할까? 말이 풍성한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지 못한다면 아마도 좀이 쑤실 듯하다. 꿀벌이 이 꽃 저 꽃 날아다니지 못 한다면 생태계 파괴는 물론, 머잖아 인간도 멸종한다는 말도 있잖은가.

호숫가 공터에 심어진 배추도 포기를 동여맨 그 몇 겹의 지푸라기에 갇혀 광합성도 제대로 못한 채 비정상적인 생장을 감수하고 있다. 얼마나 숨이 막힐까. 이로보아 자유는 동, 식물은 물론 인간 삶의 필수적 요건이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지난날 맘껏 누렸던 자유와 자잘한 행복을 상실 했다. 단풍이 꽃처럼 곱던 가을 날, 가족들과 단풍놀이도 망설였다. 음식점도 마음 놓고 갈 수 없다. 사회적 거리를 지키느라 음악공연장 및 영화관도 찾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우린 민족의 저력으로 기필코 이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다. 그래 신분고하, 국적불문하고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위험한 자유로움을 억압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희망을 지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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