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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멀쩡한 가구가 버려진 게 눈에 띄었다.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일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아닌가. 그럼에도 이사철만 돌아오면 이렇듯 쓸 만한 물건들이 쓰레기로 버려지곤 한다. 그것을 볼 때마다 왠지 아깝다. 한 쪽엔 서랍장이 부서져 잔해인 나무만 끈으로 묶여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성한 목재다. 이것으로 야트막한 나무 의자를 비롯, 집 안에 선반 등을 만들면 생활에 유용할 듯하다.

이 생각에 이르자 어린 날 기억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어머니는 장터에서 토끼 한 쌍을 사왔다. 사과 궤짝에 토끼 한 쌍을 넣어두었다. 하지만 비좁은 공간이어서인지 토끼는 제대로 운신을 못한 채 한껏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이에 안쓰러워 직접 토끼집을 짓기로 했다. 톱을 들고 뒷산을 찾았다. 토끼집을 지을 나무를 잘라 한 아름 안고 집으로 왔다. 그리곤 마당에서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못을 박아 드디어 토끼집을 완성했다. 비록 엉성하지만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춘 토끼집이었다. 이를 본 어머닌, " 우리 딸이 참으로 솜씨가 좋구나!"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날 어머니의 칭찬은 학교에서도 교실 환경 정리, 청소 등을 솔선수범하도록 이끌었다.

당시 내 힘으로 토끼집을 짓자 어린 마음에도 뿌듯했다. 그 일 이후로 설거지 및 집 안 청소, 동생 돌보기 등 집안일을 돕는 일에 주저치 않았다. 도깨비 방망이로 둔갑한 요즘 부모들이 들으면 이해할 수 없을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학교가 파하면 오로지 학원 순례에 길들여지고 있잖은가. 아이들이 스스로 집안일을 거들며 책임감과 성취욕 및 일의 과정 등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는 일만큼 좋은 공부가 어디 있으랴. 지난날 토끼집을 지으며 무슨 일이든 공을 들이고 노력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 일찍이 경험할 수 있었다.

요즘도 병환 중인 친정어머니를 위하여 매일 정성껏 죽을 쑤고 있다. 죽도 힘들게 쑬 필요 없다. 죽 가게에 가면 종류 별로 고를 수 있잖은가. 이게 아니어도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3D 기피 현상이 우리들 의식 속에 뿌리 내린지 이미 오래다. 노력하지 않고 힘 안들이고 어찌 어떤 일의 만족한 결과물을 얻을 것인가.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그 무엇도 없잖은가.

물만 부으면 금세 활짝 피어나는 플라스틱 컵 속의 꽃을 본 적 있다. 그 꽃을 대하며 자연의 섭리마저 문명의 그늘에 잠식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는 어쩌면 나만의 고루한 생각일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이젠 우주의 시대마저 열고 있다. 그까짓 꽃 한 송이 단숨에 피우는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잖은가.

하지만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하여선 그에 합당한 과정을 치러야 한다. 다 알다시피 씨앗이 땅 속에서 싹을 틔우기까진 바람과 비를 맞고 햇살을 받는 게 순리 아니던가. 그런데 무슨 묘술인양 물만 부우면 즉시 꽃이 피어나니 기이한 현상인 것만은 사실이다. 한편 그 꽃을 십수년 전 어느 백화점에서 본 후 기발한 착상이련만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급속히 인공적으로 피어난 꽃엔 향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보자 대뜸, '우린 이 꽃처럼 너무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에만 연연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녕 '빨리빨리 증후군'에 시달리다보면 우리 특유의 민족성인 은근과 끈기가 말살 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라면 지나칠까.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편리하고 신속할수록 '최고의 진(眞)이자, 선(善)과 미(美)'라고 여긴다. 그러나 인간이 쏟는 노력과 공(功)만큼은 신도 미처 행하지 못할 최상의 진(眞)이며 선(善)이고 미(美)가 아니던가. 이런 세태여서인지 매사 노력과 공을 들이는 일이야말로 과학과 문명의 후광이 공존하는 행복한 삶임을 새삼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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