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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몸도 춥고 가슴도 시리다. 그래서인가. 음식도 따뜻한 게 좋다. 삼복더위에도 뜨거운 숭늉을 찾곤 한다. 무엇이든 차갑고 냉랭한 것엔 거부감이 든다.

대 여섯 살 때 일이다. 외가에 가면 머리맡에 윤이 반들반들 나는 놋쇠 요강이 놓였다. 밤에 자다가 요의尿意를 느끼곤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어둠 속에서도 할머닌 용케 아시고 은가락지 낀 손으로 요강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곤 겨울철이면 싸늘한 요강 언저리를 당신 손바닥으로 온전히 감싸준 후 소변을 보게 했다.

현대는 예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획기적이고 편리한 삶이다. 안방에서 몇 발짝만 나가면 비데까지 갖춘 좌변기가 마련된 화장실이 있잖은가. 이 뿐만이 아니다. 관공서 및 일반 공중 화장실, 고속도로 휴게실 등의 화장실은 어떤가. 청결과 위생적 지수를 한 눈에 짐작할 수 있을만큼 화장실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다.

어렸을 땐 화장실이 후미진 곳에 자리해 있었다. 겁이 많았던 필자였다. 한밤중에 볼일을 보려면 잠든 남동생이나 어머니를 흔들어 깨워 손을 이끌고 함께 변소를 가곤 했었다. 또한 재래식 화장실은 큰 시멘트로 만든 통을 땅 속에 깊이 묻었다. 그 위엔 나무로 만든 발판을 걸쳐놓았다. 밤에 혹여 발이라도 헛디디면 깊은 통 속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비가 올 즈음이면 재래식 화장실에서 풍기는 암모니아 냄새는 참으로 지독했다. 어디 이뿐이랴. 여름철이면 화장실 시멘트 통 속안엔 구더기가 바글바글 했다. 심지어 통통하게 살이 오른 구더기였다. 그 모습은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비료가 귀했던 그 시절, 농촌에서 인분人糞은 농작물에 요긴히 쓰이는 거름으로도 작용 했다.

해서 어른들은 남의 집 마실을 갔다가도 용변만큼은 집에 돌아와 해결할 정도였다. 이 때 방안마다 놓인 게 요강이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여도 요강은 혼수목록에 빠져선 안 될 필수 품목으로 자리했다. 딸 결혼식을 앞둔 친정어머니는 요강 속에 붉은 팥과 찹쌀을 가득 채우며 딸이 첫날밤을 무사히 치루기를 기원 했다. 이는 부부간에 금슬 좋게 잘 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 그 시절엔 소위 성격 차이로 이혼하는 부부가 흔치 않았다. 그야말로 조강지처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극진 했었다고나 할까. 오죽하면 조강지처를 내치면 인생 파멸과 천벌을 받는다고 믿어왔을까. 걸핏하면 사랑 앞에 등 돌리고 상대방의 진정한 사랑도 계산기로 두드리는 작금昨今의 세태를 떠올리면 격세지감隔世之感마저 느낀다.

옛날엔 먼 혼행길에 오르는 신부의 가마 속에는 솜을 눌러 담은 요강이 꼭 준비돼 있었다. 새색시가 용변이 급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새 색시가 가마 안에서 볼일을 볼 때 그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가서 가마 밖 사람들이 듣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한낱 요강 속에도 우리네 옛 여인들이 지닌 정숙의 미덕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요강은 야호夜壺, 혹은 음기 飮氣, 설기 褻器, 수병潚甁이라고도 불렸다고 사전은 밝힌다. 이밖에도 요강은 한국 뿐 아니라 북아메리카,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사용 되었다고 한다.

신분 고하를 막론한 생활필수품이었던 요강 소재는 사기, 놋쇠, 쇠가죽 등 제 각각이었다. 그 중에는 종이를 꼬아 옻칠을 하여 만든 종이 요강도 있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만 하여도 밤마다 안방을 지키던 요강이다. 이젠 휘황한 문명의 불빛에 의하여 우리 곁에서 요강도 사라졌다. 이와 함께 어인일로 본향本鄕도 잃은 지 오래다. 신信, 의義, 정情을 지키면 눈앞의 잇속에 이용하여 진심을 짓밟기 예사랄까. 편법과 위선이 난무하는 세태여서인가. 날이 갈수록 가슴 속은 구멍이 송송 뚫린 듯 허허롭다. 마음의 허기 탓인가. 어린 날 시퍼런 추위가 문지방을 넘는 겨울밤 요강 언저리를 당신 체온으로 덥혀주던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요즘 따라 부쩍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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