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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평소 대통령들의 개인적 감정이 못내 궁금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이런 호기심이 다소 해소됐다. 외국의 경우이긴 하다. 미 의회 도서관 역사연구가인 제럴드 가월트(Gawalt)가 역대 대통령들이 자신의 부인에게 보냈던 편지를 모아 펴낸, '내 사랑 대통령'이라는 책에 의해서다. 이 책 속 " 당신을 만져야 겠소. 아니면 난 터져버릴 것이오."라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편지 내용이 있다. 이것을 읽을 땐 온몸이 간지럽다 못해 전신이 심히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반면 나 역시 여인이어서일까? 이런 남편을 둔 낸시 여사가 갑자기 부러웠다. 이 편지 내용에선 레이건 대통령의 아내를 향한 참사랑을 가히 짐작 할 수 있어서다. 어디 이뿐인가. 린든 존슨 대통령은 레이디 버드 영부인에게 "오늘 아침 나는 야망과 자신감, 정열에 가득 차 있고,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하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텍사스 주의 젊은 하원 의원이 된 직후 보낸 편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결혼 닷새 전 자신의 신부에게, "나는 당신을 숭배한 나머지, 당신을 만지는 것이 거의 신성모독처럼 느껴집니다."라는 내용의 그야말로 닭살 돋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로보아 대통령도 사랑이란 감정 앞엔 한낱 평범한 한 남성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메말랐던 마음자락에 습윤(濕潤)을 얻는가보다. 미국 대통령들의 연서(戀書)로 미루어 보건대 대통령이라는 직업적 성취 이면엔 남성으로서 사랑을 향한 열정 또한 용광로 속처럼 뜨거웠음을 느낀다.

이렇듯 편지 속엔 보내는 이의 마음이 오롯이 내재돼 있다. 하지만 요즘은 육필로 편지를 쓰거나 받는 일이 지극히 드물다. 손바닥 안의 세계로 통하는 스마트 폰 시대 아닌가. SNS 및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편리한 반면 우리네 아름다운 정서를 앗아갔다. 분홍빛 종이 위에 정성들여 편지를 쓰는 일 따윈 번거롭고 성가신 일쯤으로 여기게 하였잖은가.

베이비붐 세대라면 젊은 날 연애편지 한 두 통쯤은 써 보거나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학창시절 짝사랑해 온 남학생들로부터 하루가 멀다않고 받은 편지가 엄청난 양이었다. 개중에는 미처 겉봉조차 뜯어보지 못한 편지가 다수다. 지난날 연서를 쓰고 받으며 다져온 필력은 오늘날 덕을 보고 있다. 나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다면 지나칠까. 이러한 경험으로 살펴보면 말과 글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또한 글이 지닌 영향은 의외로 강력하다. 실례로 1969년 닉슨 미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 했을 때 일만 돌이켜봐도 그렇다. 엘리제 궁에서 베푼 만찬 자리서 드골 대통령의 환영사는 닉슨을 비롯 미국 측 일행들의 가슴을 뒤흔들기도 했다. 내용뿐만 아니라 논리적이고 절제된 표현, 적확하고 무비(無比)한 용어 구사가 일품이었기 때문이란다. 실은 이 명연설도 드골이 미리 원고를 써 놓은 것을 암기, 즉석 환영사로 이어졌다. 글과 말의 힘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글과 말 중, 말은 발설과 동시에 사라지나 글은 보전 여하에 따라 영구적일 수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친정집에서 발견한 학창시절 받은 연애편지만 살펴봐도 새삼 글의 위력과 그 질긴 생명력을 실감 할 수 있다. 어인 일인지 개봉조차 안했던 다수의 편지 뭉치는 오랜 세월 탓인지 편지 겉봉이 누렇게 변색돼 있다. 수 십 년 만에 비로소 햇빛을 본 편지 속엔 그 시절 남학생들의 애틋한 순정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그 감흥은 곧 손을 가슴에 얹게 했다. 당시 무슨 연유로 그토록 많은 편지를 보내온 남학생들의 절절한 마음을 매몰차게 외면했던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들의 애절한 가슴앓이를 헤아리게 된다. 왠지 마음이 아리다. 문득 오늘이라도 그들에게 긴긴 두루마리 편지로 마음의 답장이라도 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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