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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프랑스 여성들은 완벽한 화장법으로 손톱의 메니큐어를 꼽는단다. 심지어는 아무리 얼굴에 화장을 예쁘게 하고 옷을 근사하게 차려입었어도 손톱을 치장하지 않으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정도란다. 이 말이 낭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화장술은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도 이미 친숙하다. 손톱 및 발톱에 정성껏 네일 케어 및 페티큐어를 하는 게 그것이다. 코로나19로 생활 속 거리가 강조되는 시점이지만, 여인네들의 미를 추구하는 마음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가 보다.

동네 어느 네일 샵 앞을 지나칠 때 마스크를 쓴 여인들 서,너 명이 손톱에 네일 아트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또한 '네일 케어를 받아볼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가사家事로 거칠어진 손이어서 이내 포기했다. 나의 손을 바라보다가 문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어떤 손일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느 젊은이가 갑자기 생각나서이다.

수년 전 화재보험을 들기 위하여 보험회사를 직접 찾았다. 보험회사 사무실을 들어서자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이 친절하게 나를 맞는다. 그리곤 화재 보험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 해줬다.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내게 자신에 관한 소개를 해온다. 본래 그는 음악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으나, 번번이 교향악단 오디션에 합격하지 못하였다고 토로했다. 나또한 큰 딸이 현악을 전공한 터라 그 젊은이의 처지에 공감 했다. 비싼 등록금과 레슨비를 지불하고 음악을 전공한 수많은 음악인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에 종사하기 예사여서이다.

그는 지난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단다. 학원 강사 및 식당 운영 등을 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못 봤다고 했다. 궁여지책 끝에 보험 회사에 갓 취업하여 자신은 신입 보험설계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보험을 필요로 하는 지인들이 있으면 자신에게 소개해 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그래 나는 얼결에, "그러겠노라"라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젊은이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이제야 비로소 보험 약정 기한이 다 되어 그에게 전화를 했으나, 통화가 안 되었다. 하여 보험 회사에 문의를 한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 년 전 그는 자살을 했단다. 무슨 연유로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끊었는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난데없는 비보에 갑자기 콧날이 시큰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모르긴 몰라도 어쩌면 그의 높은 이상과 현실적 괴리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라는 추론마저 들었다.

한편 고인이 된 그 젊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구두 언약도 분명 약속이 아니던가. 나의 주위 사람을 자신에게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했을 땐 얼마나 절박하면 그리 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그가 내민 손을 미처 잡아주지 못했다는 회한에 마음이 아팠다. 누구나 삶의 문제만큼은 절실한 게 인지상정이거늘, 나또한 그런 경험을 했잖은가.

지난날 남편의 사업 실패로 아이들이 학교 급식비도 못 내어 걸핏하면 학교 교무실로 불리어가는 일이 잦았다. 그 당시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게 이 일이 아니었나 싶다. 딸아이들이 급식비를 못 내서 교무실로 불리어 갔을 때 얼마나 어린 마음에 상처가 컸을까 싶어 그때를 생각하면 이즈막도 가슴이 저리다. 이렇듯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나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던 친구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벅차다.

선뜻 얼마간의 돈을 내게 융통해 주며 훗날 형편이 허락되면 갚으라는 친구의 배려는 당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타심이다. 삶의 고통에 갇혀 절망의 늪을 헤어나지 못할 때 내 손을 기꺼이 잡아줬던 그녀의 따뜻한 손이다. 그 손은 지금 이 시간에도 내게 든든한 희망의 밧줄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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