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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10.14 17:26:15
  • 최종수정2020.10.14 19:57:49

김혜식

수필가

어머닌 홧김에 내 손에서 책을 빼앗아 힘껏 방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럼에도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이에 어머닌 지쳤는가보다. 물끄러미 나를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마침 시험 기간이었다. 하지만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몇날 며칠을 책상 앞에 앉아서 한 권의 책에만 집중 했다. 어머니 보기엔 이런 내가 매우 못마땅했을 것이다. 더구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읽으니 어머닌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요즘 어린이들은 매우 성숙하고 한편 조숙하다. 일예로 초등학생이 어른들이나 도전할 법한 트로트 가수 선발 대회도 참가하곤 한다. 이 때 수많은 대중 앞에서 조금치도 수줍어하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이것만 살펴봐도 예전 우리 세대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수십 년 전 아이들은 마냥 순진하고 천진난만 하여 정녕 동심을 지닌 어린이다웠다.

그 시절 어린이들은 기껏해야 만화책 및 동화책이나 읽곤 하였다. 이와 달리 책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 못할, 『인생론』을 읽으니 어머니로선 어이가 없었을 법 하다. 돌이켜 보건대 그때는 책 내용이 재미있어서 읽은 게 아닌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 대하는 어렵고 생소한 내용 그 자체가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게 어린 마음에도 매우 감흥 깊었다. 또한 '내가 어디서 생겨났는지를 알자'라는 내용은 더욱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죽은 뒤 영혼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한다면 태어나기 전 영혼은 어떠했을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라. 만약 당신이 어딘가로 갈 계획이라면 분명 당신은 어딘가에서 온 것이다."라는 그의 언명은 평소 '나는 어디서 왔을까?'를 고뇌하던 나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문구가 되고도 남음 있었다. 이로보아 나 역시 매우 조숙하였던 것 같다.

어린 날부터 나를 책벌레로 이끈 책은 단연 톨스토이의 『인생론』이라고 손꼽고 싶다. 이후 상급학교에 가서는 세계명작에 눈을 돌렸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니체가 서술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헤르만 헤세 작 『데미안』,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꼽추』등을 읽었다. 학교 공부보다 책읽기에 더욱 심취했었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였다.

젊은 시절 한 때 내 영혼이 휘청 거린 적이 있었다. 이 때 고전을 읽으며 나 자신을 가까스로 정립 했다. 공자가 지은 『논어』, 손자의 『손자병법』이 그것이다. 이에 더하여 세계고전 문학인 사뮈엘 베게트 지음 『고도를 기다리며』, 사르트르 작 『구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등 문면(文面)의 글들은 빈약했던 내 마음 밭에 윤기와 풍요로움을 충만 시켜주었다. 덕분에 삶에 대한 해답을 이 책들을 통해서 얻기도 하였다.

어인일인지 이즈막은 젊은 날과 달리 '책맹(冊盲)'이 된 기분이다. 넘치는 게 책이다. 서재에 빼곡히 진열된 책들만 다 읽어도 인생 바다를 거지반 반은 항해한 셈이 된다. 이를 잘 알면서도 독서를 게을리 하고 있다. 그 탓인지 중국 전한(前漢)때 재상을 지낸 유학자 광형(匡衡)의 이야기가 생각나자 갑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광형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몹시 좋아했으나 집안이 가난했다. 하여 낮엔 일하고 밤에 책을 읽었다. 등불 켤 기름조차 없을만큼 집안 살림이 궁색했다. 하는 수없이 그는 이웃집 벽에 몰래 구멍을 뚫어 거기서 들어오는 불빛으로 책을 읽었다. 그래 어려운 환경에서도 책 읽는 것을 이르는 고사성어 착벽인광(鑿壁引光)이 생겨났나보다. 독서 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이유는 책 읽을 등불이 없어서가 아닐 것이다. 책 말고도 즐거움을 주는 볼거리가 갈수록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20세기 중반 작가 존 스타인벡이 남긴 언술처럼 책이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등과 겨루면서도 오랜 세월 질긴 생명 줄을 유지해 온 사실을 주목할까 한다. 이 비결을 올 가을엔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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