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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요즘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다. 고들빼기김치, 총각김치, 보쌈김치 등 가족들 입맛을 맞추기 위해 몇 종류 김치를 담그노라면 온종일 주방에서 종종걸음이다.

 며칠 전 고들빼기 김치를 버무릴 때다. 지인이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바쁘다고 거절했더니 집 앞이니 빨리 나오라고 독촉한다. 하는 수없이 하던 일을 멈춘 채 미처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밖엘 나갔다. 나를 반긴 그녀가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코를 킁킁거린다. 무슨 냄새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감이 안 잡힌다. 아침 일찍 운동을 마친 후 샤워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종전에 사용한 멸치 액젓,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의 양념 냄새가 몸에 밴 듯하다.

 그녀에게서 '냄새'라는 말을 듣자 문득 초등학교 3학년 때 단짝이었던 영숙이 모습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동네 목욕탕 집 딸이었다. 영숙이는 겨울이 오면 당시로는 귀했던 빨간색 외투는 물론, 벙어리장갑, 방울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다니곤 했다. 그런 영숙이를 볼 때마다 마냥 샘이 났다. 혹한에 몸을 보온할 변변한 웃옷 한 벌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궁핍했던 지난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예쁜 디자인, 고운 색상의 따뜻한 옷을 입고 다니는 영숙이가 마치 딴 세상 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찌 영숙이 뿐이랴.

 뽀얀 얼굴, 희디흰 긴 손가락에 반짝이는 보석 반지를 낀 짙은 화장을 한 영숙이 어머니다. 그 애 집에 놀러 가면 영숙이 엄마는 과일, 빵 등의 간식을 챙겨주곤 했다. 그때마다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향긋한 향기가 맛있는 간식보다 더없이 좋았다. 심지어는 어린 마음에 영숙이 엄마가 풍기는 그 향내마저 부러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냄새는 다름 아닌 분(粉) 내음이었다. 영숙이 엄마와 달리 어머니는 화장기가 없었으나 복사꽃처럼 고왔다. 그러나 어느 땐 어머니 몸에선 역겨운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밤에 잠을 자다가 악몽에 시달릴 때 어머니 품속을 파고들면 찝찌름한 반찬 냄새가 나곤 했다. 이런 냄새는 여름철이면 더욱 심했다. 철없던 나는 그런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오면 못 본 체 멀찍이 피하곤 했다. 참으로 불효한 행동이었다. 영숙이 엄마는 가정부를 채용해 집안일을 맡긴 채 자신은 몸치장이나 하고 손끝에 물방울만 튕겼다. 우리 어머니는 가난을 온몸으로 맞서며 우리들을 양육하느라 늘 비지땀을 흘렸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날만 새면 부엌에서 보리쌀을 삶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김치를 담그며, 메주를 쑤고 해마다 장을 담갔다. 또한 여러 자식들이 벗어놓는 옷가지들을 매일이다시피 빨래를 하느라 허리가 휜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닌 집안일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생계를 위해 남의 궂은일까지 도맡았다. 어린 날 어머니 몸에서 풍겨왔던 냄새는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고귀한 땀 냄새였다는 것을 세 딸을 키우면서야 비로소 깨우쳤으니 뒤늦게 철이 든 셈이다.

 우리 형제들이 이만큼 심신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순전히 어머니의 희생, 헌신, 그리고 사랑에 의해 이뤄진 일이련만, 철없던 나는 영숙이 엄마가 풍기는 향기에만 매료됐었다. 뿐만 아니라 땀 냄새, 양념 냄새로 얼룩진 어머니를 기피하기까지 했었으니 참으로 이 점이 못내 뉘우쳐진다. 이제 어머니 몸에선 어린 날 그토록 맡기 싫어했던 땀 냄새, 음식 냄새가 더 이상 나지 않는다. 팔순을 훌쩍 넘긴 연로한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당신의 육신이 무너지고 있다. 관절염, 몇 번의 척추 수술을 한 어머니다. 어머니를 뵈러 가면, 어느 때는 코를 자극하는 파스 냄새만 진동한다. 지난날 그토록 코를 쥐고 고개를 돌리게 했던 어머니의 냄새는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 요즘 따라 어린 날 어머니 품에서 맡던 땀 냄새, 양념 냄새가 유독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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