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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눈이라도 한바탕 내렸으면 좋겠다. 온 세상의 추醜와 악惡을 하얗게 뒤덮을 양 소리 없이 내리는 흰 눈을 바라보노라면 아련한 옛 추억을 모처럼 소환할 수 있어서인지 요즘 따라 부쩍 눈이 오길 기다려진다.

눈이 내리길 손꼽아 기다리노라니 문득 어린 날 보았던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뒤울안 풍경이 떠오른다. 일곱 살 즈음이었다. 장독대며, 뒤꼍에 찍힌 새들의 발자국을 발견한 나는, '이 추운 겨울날 새들은 어떻게 눈길을 맨 발로 걸었을까?'라는 엉뚱한 의구심에 직접 맨발로 눈길을 디뎌 보기도 했다. 그 때 불과 몇 걸음 걷지도 못한 채 빨갛게 언 발로 부리나케 따뜻한 아랫목을 찾았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새롭다.

어찌 이뿐이랴. 어느 겨울 날 큰 이모가 우리 집에 왔다가 떠날 채비를 차렸다. 이때 나를 옷자락에 싸안고 함께 가자며 이모 옷깃을 부여잡고 보챌 때도 흰 눈이 펑펑 쏟아졌다. 평소 나를 마치 당신의 친자식처럼 귀여워하고 살갑게 대해주던 이모다. 그런 이모와의 헤어짐은 어린 가슴에 일찍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을 각인 시켜주고도 남는 일이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나를 가까스로 뿌리치며 눈물을 머금고 먼 길을 떠났던 이모였다. 흰 눈으로 뒤덮인 신작로를 걸어가던 이모의 모습이 희미해 질 때까지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던 이모였다.

어린 날 외가에 가면 당시 청상靑孀이었던 이모는 내 나이 대, 여섯 살 때부터 내게 사물의 현상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던지곤 하였다. 하루는 어린 참새 한 마리가 외가 뜨락에 주저앉은 채 한쪽 다리를 절며 날지를 못했다. 그것을 보고 내가 참새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자, 이모는 이를 제지하면서, " 얘야! 참새가 왜? 저렇게 됐을까?" 라고 물어왔다. 나는 이모의 그 물음에, "미루나무 위 둥지에 앉아있던 새를 겨울 바람이 큰 손으로 힘껏 밀쳐서 땅에 떨어졌어요."라고 대답했단다.

또 있다. 여름밤이면 이모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소재로 이야기를 꾸며서 자신에게 들려달라는 주문도 했다. 이 때 나는 하늘의 아기별이 땅에 무척 내려오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 아빠별이 아기별이 길을 잃을까봐 보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 때문에 아기별이 여태 단 한 번도 우리 집 마당에 내려오지 못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꾸며서 이모께 들려줬다. 이런 일은 초등학교 입학해서도 자주 있었다. 초등학교 이 학년 때 쉬는 시간만 돌아오면 교단에 서서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내가 지어낸 동화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하였다.

그러고 보니 큰 이모는 그리움과 이별의 비의悲意와, 오늘날 나의 문학적 자양분을 안겨준 분이다. 어린 시절 나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한껏 자극 하였으며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이모도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다. 이즈막 마음자락에서 점점 그리움이 희석되는 느낌이다. 날로 피폐해지는 감성을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흰 눈이 내리면, 어린 시절의 일들을 회상하며 하염없이 눈길을 걸어볼까 한다.

그리곤 어린 날 이모와의 추억이 오롯이 배어있는 행복했던 시간과 가슴 아픈 이별, 애틋한 그리움을 눈길 위에서 다시금 곱씹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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