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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수 년 전 모 화재 보험회사를 찾았다. 단풍이 꽃처럼 붉게 타오르던 10월 어느 날이었다. 이곳을 찾았을 때 어떤 젊은 남성이 다가와 선뜻 시원한 음료수를 내게 권한다. 그 청년에게 직접 보험 사무실을 찾은 연유를 말하자, 자신이 보험 설계사라며 친절히 안내를 한다.

그날 한 달에 얼마간 금액을 예치하면 5년 후엔 일정 금액을 환급 받는 조건의 화재 보험에 가입했다. 보험 가입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 보험설계사는 내게 " 저희 사무실을 직접 찾아오셨으니 제가 식사 대접 하겠습니다"라는 뜻밖의 제의를 해온다. 보험설계사의 호의를 거절 할 수 없어 하는 수없이 식당을 찾았다.

음식을 주문 한 후 그와 식탁에 마주 앉자마자 처음 보는 내게 묻지도 않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는 불과 수년 전만 하여도 어느 교향악단에서 잘나가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고 한다. 건강상 부득이 그곳을 그만두었단다. 나 역시 큰 딸이 교향악단 비올라 연주자로 근무하고 있던 터라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는 음악 연주자를 그만둔 후 갈 곳이 없었다고 했다. 노동일, 세차장 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왔단다. 그의 전공이 음악인지라 교향악단 연주자 경력을 받아주는 직장은 흔치 않다고 했다. 다시금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서 교향악단 오디션에도 수없이 도전했으나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단다. 마치 낙타가 바늘귀 들어갈 만큼 그곳의 문은 좁디좁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비싼 등록금을 치르고 배운 음악이 의외로 사회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필자 역시 지난날 큰딸아이 음악 공부를 시키느라 그야말로 아파트 몇 채 값을 교육비로 지출했다. 음악인들은 어느 악기 전공을 막론하고 비싼 레슨비, 고가의 악기 값, 사립대학일 경우 일 년에 1천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등록금 등을 지불한다. 이 탓에 부모들은 자식 음악 교육에 등골이 휠 정도다. 더구나 해외 유학을 꼭 다녀와야만 그 실력을 인정해 주는 사회 인식 탓에 부모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해외 유학을 보내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 그릇된 의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만 유학을 다녀오지 못한 음악인들도 한국에서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다. 이 일에 정부도 애정과 관심을 필히 가져 주어야 한다.

이렇듯 부모가 뼈골 빠지게 전 재산을 바치다시피 음악을 가르쳤으나 음악인들 취업의 문턱은 너무도 높고 좁다. 이 탓에 우리나라 음악 인재들은 일정한 직업 없이 가까스로 개인 레슨을 하거나 아님 학원 운명 및 소수의 음악전공자들만이 교향악단 단원이 될 뿐이다. 그나마도 코로나19 발병으로 요즘은 개인 레슨도 줄어들었다. 이 젊은이 경우만 하여도 한 때 유능했던 음악인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음악 연주를 그만두면 생계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 작금(昨今)의 세태가 참으로 안쓰럽다.

그의 일정하지 않은 수입으론 가족들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단다. 해서 궁여지책 끝에 보험 설계사로 전환했다고 하였다. 궁핍한 삶 속에서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란다. 언젠가는 자신도 다시금 만인의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연주할 날이 꼭 찾아오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에게 음악 연주는 곧 행복이요, 삶의 의미란다. 평소 음악을 연주할 기회를 잃다보니 늘 우울하다고 했다.

며칠 전, 새로운 화재보험 설계사의 전화를 받았다. 그로부터 뜻밖의 비보를 접했다. 전의 보험설계사가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으로 안타까웠다. 성실하게 살던 젊은이가 아니던가. 함박눈이 내리는 1월, 눈을 들어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천상에서 자신의 행복의 파랑새였던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이 환상처럼 어려와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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