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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9.08 16:16:40
  • 최종수정2021.09.08 16:16:40

김혜식

수필가

구부정한 뒤태지만 공경심이 인다. 웬만하면 여보란 듯 카메라 앞에 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간신히 자신을 찾아간 기자에게 꼭 사진이 필요하다면 뒷모습만 찍으라고 주문했잖은가. 겸손한 인품이 절로 묻어나는 언행이 아닐 수 없다.

누렇게 빛바랜 신문 쪼가리에 인쇄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사람답게 사는 이치를 깨우치는 순간이었다. 비록 많은 업적을 남긴 세기적 위인은 아니어도, 불후의 예술작품을 남긴 명장이 아니어도 이에 못지않은 잔잔한 감동과 감흥을 안겨주는 신문 기사 속 인물에 절로 존경심이 일어서다.

이토록 경외심을 자아내는 것은 강한 이타심이 내재 돼서이다. 이는 필자의 지난 삶을 반성케 하는 힘마저 지녔다. 자신의 삶은 비록 여유롭지 못해도 타인에게 베푸는 사랑만큼은 고결하고 넉넉하기조차 하잖은가. 내 것을 아끼지 않고 덥석 남에게 내준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다. 평소 자신은 절약과 검박한 삶을 실천하며 물 한 방울조차 아끼면서도 어려운 이들에겐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나누잖는가.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이 기사를 읽은 후 갑자기 나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뜨겁게 덥혀지는 것을 느꼈다.

기사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청춘의 꽃 미남도 아니요.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섹시남도 아니다. 단신의 깡마른 노구로써 고령의 팔순 할아버지다. 하지만 그를 지배하는 정신만큼은 푸르고 청신하며 고귀하기조차 하다. 참으로 마음이 맑고 순연하다. 얼마나 순수한가. 그의 마음이 썩고 혼탁하다면 어찌 이런 선행을 행할 수 있으랴. 온갖 탐욕으로 말미암아 어두운 밤길을 숨어서 걷다가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면 부정한 방법으로 물질을 탐하여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안위만 챙기잖은가. 이런 이들이 심연에 맑은 혼이 깃든 샘터가 존재했다면 어찌 이런 일에 가담하겠는가.

그동안 만고풍상萬古風霜에 시달림직 한 할아버지다. 그럼에도 그분 가슴 속엔 맑디맑은 깨끗한 혼의 샘이 솟구치고 있었다. 비록 자신은 겨울용 양복, 여름용 양복 각 한 벌씩이 유일한 나들이 옷일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살면서도 타인을 위해선 아낌없이 베푸는 바보였다. 그는 노쇠하여 남루한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금강석처럼 빛나고, 기품 있으며 꽃보다 아름답다. 할아버진 허욕의 옷을 훌훌 벗고 비단 옷보다 더 값진 마음의 옷을 늘 준비해온 분이다.

지난날 연말연시가 다가오면 텔레비전 화면에서 단골로 비쳐지는 게 있었다.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찾아가서 라면 박스를 산더미처럼 앞에 쌓아놓고 과시용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모습이 그것이다. 이에 비하면 얼마나 탈속한가, 이즈막 도덕성이 창백해져 각박한 세태여서일까. 할아버지의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 실천이 팍팍한 삶에 한껏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할아버지 자신은 30년 된 외투, 15년 지난 냉장고, 20년이 넘은 20인치 텔레비전이 가재도구 전부지만 그 삶조차도 궁색해 보이지 않는 것은 어인일까.

난방 시절도 제대로 안된 낡은 가옥에 살면서 겨울이면 투명 비닐로 창문마다 가린 채로 생활한다고 했다. 혹한에 난방비를 아끼느라 실내에서도 귀마개와 두꺼운 점퍼를 입고 생활 하는 할아버지다. 본인은 이렇듯 삶의 고통을 스스로 겪으면서도 주위의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만큼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지난 10여 년간 2만 원 정도의 소액 기부도 꾸준히 해왔단다. 아프리카 국가 어린이들과도 10 여 명과도 결연을 맺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젊은 날 화학을 동경했던 그는 서울 대 발전 기금으로 1억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 돈으로 서울 대 교수나 학생 중에 노벨 화학상을 받는 사람이 나오면 포상금으로 사용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다. 요즘 좀체 벅찬 감동에 젖는 일이 별반 없었다. 다행히도 신문 스크랩을 들추다 읽은 기사 내용이 역병 창궐로 인해 피로감과 우울함에 갇힌 가슴에 모처럼 습윤濕潤을 안겨준다. 이로보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은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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