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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2.08 15:10:57
  • 최종수정2023.02.08 18:16:48

김혜식

수필가

재래시장에서 일이다. 노점상인인 어느 할머니와 젊은 여인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걸음을 멈춘 채 귀기울여보니 물건 값 때문에 옥신각신 하는 것이었다. 사연인즉 여인이 채소류를 사면서 5만 원 권을 분명히 냈단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만원 만 받았다고 우긴다고 했다. 분을 못참은 듯 여인은 할머니를 향하여 입에 게거품을 물며 악다구니를 퍼붓기 시작했다. "노인 양반이 남의 돈을 꿀꺽해? 보아하니 죽을 날이 곧 코앞인 듯 한데 정직하게 살아요" 라고 충고까지 한다. 이에 할머니는, "만 원만 받았으니, 받았다고 하지 내가 왜? 남의 돈을 가로채겠나. 죽는 것은 나이도 필요 없어. 자넨들 이를 어찌 장담하나?"라며 억울한 듯 음성을 높인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왠지 측은지심이 일었다. 시퍼런 힘줄이 불끈 솟은 앙상한 마디 굵은 손, 추레한 외양에선 고단한 할머니 삶을 대충 미뤄 짐작 할 수 있어서다. 그런 할머니 입에서 누구나 죽음 앞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 나왔을 때 갑자기 죽음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그러자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내용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에 위치한 모현 호스피스에서 봉사를 하는 어느 수녀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녀는 사람들이 이곳을 두고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간이역'이라고 흔히 부른다고 했다. 이곳은 2006년도에 문을 연 이후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주로 말기 암 환자들이 이곳에 머물며 죽음을 맞이하는데 환자 95%가 '한 달만 더 이곳을 빨리올 걸' 하며 아쉬워한다고 했다.

그녀가 잊지 못하는 죽음도 있었단다. 키도 크고 잘생긴 30대 젊은 남성이 맞은 죽음 때문이란다. 그가 배가 아파 우연히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이란 진단을 받고 이곳을 왔을 때 마침 만삭인 아내가 제왕 절개로 아이를 낳았단다. 그에게 죽음이 임박해지자 실밥도 채 제거하지 못한 아내가 병실에서 침대를 맞대고 하룻밤을 보낸 후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냈다고 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녀는 명치끝이 뻐근하다고 밝혔다. 이 내용을 떠올리자 '졸지에 남편을 잃은 아내는 당시에 얼마나 슬프고 애통하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최근에 읽은 한 권의 책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았을 때 그 유해를 영원히 곁에 둘 수 있다는 방법이 있음을 깨달았다. '2023 한국인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라는 KOTRA에서 발행한 책에 의해서다. 이 책 내용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변화들을 기록한 책이었다. 이 책 내용 중 필진인 이성은(달라스 무역관) 씨가 집필한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닌 미국에서 새롭게 부상한 비즈니스 트렌드인 '데스테크'의 사례이다. 그는 이 내용에서 인간이 죽음을 맞을 때 존엄성을 유지하며 남은 이들이 고인을 아름답고 뜻깊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사업 내용을 조명했다. 환경도 고려, 인류 미래를 지속적인 가능성을 유지 하는 방안으로써 '데스테크' 산업에 대한 다양한 형태로 확장 및 진화에 대한 언술이 그것이다. 아울러 그는 '파팅스톤(parting Stone)'이 벌이는 사업도 언급했다. 이 회사는 화장한 고인의 시신을 뼛가루로 보관 할 때 겪는 불편함을 없애는 방편으로 고인의 유골을 수 십 개 돌멩이로 만든다고 한다.

이는 어찌 보면 참신하고 기발한 창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가족이나 친척이 이렇듯 돌멩이로 남는다면 고인과 아름답던 추억도 또한 슬픔을 다스리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가령 사랑했던 젊은 여성이 죽었을 경우 반짝이는 눈동자, 검은 머릿결, 아름다운 자태가 한낱 딱딱한 돌멩이로 남아 곁에 존재한다는 게 참으로 허망하고 가슴 아픈 일이긴 할 것이다. 그러나 한 줌 재로 남는 유골보다는 돌이 되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 곁에 남는 일도 썩 나쁘지만은 않을 듯싶다. 이런 일이 삶 속에 일상화 된다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게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드리는 일도 어쩌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를 일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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