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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어느 청년이 내 앞에 불쑥 고무장갑을 내민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든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눈웃음을 치며 말을 건네어온다. " 아주머니! 이 아파트 이십 층에서 아파트 내부 공사를 낼부터 하게 됐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공고문은 붙였지만, 왠지 주민들에게 소음으로 인한 민폐를 끼치게 돼 죄송한 마음에 준비했습니다. 약소하지만 받아주세요." 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종전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여겨보았던 공지문 문구가 떠올랐다. '시끄러운 날'이라는 글제 하에 친정집 아파트 이웃에서 인테리어 공사로 인한 소음이 발생한다는 공사 안내 문구가 붙여진 게 그것이다.

친정집을 찾았던 나는 이곳에 사는 주민이 아니라고 청년이 권하는 고무장갑을 거절하자, 그 청년은 친정어머니를 갖다드리라며 한사코 떠맡긴다. 그가 건넨 고무장갑을 자세히 살펴본 나는 새삼 그의 반듯한 태도에 깊은 감흥을 받았다. 자신의 업체를 광고하는 명함 정도쯤은 고무장갑 포장지 속에 끼워 넣었을 법한데, 일일이 손으로 직접 쓴 짤막한 메모만 그 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 주민 여러분! 불편을 끼쳐드려 매우 죄송합니다. 공사 날짜에 맞추어 최대한 소음을 줄이겠으니 불편하셔도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문구를 대하자 그가 참으로 예의 바르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요즘 이기심이 팽배한 세태라서인지, 주위에서 예의를 지키는 사람을 좀체 만나기가 어렵다. '남이야 어떻든 나만 편하면 된다'라는 인식 탓인지 그 청년의 언행이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예의' 하면 지키기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다면 조금치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예의가 바른 사람은 지각과 기품마저 있어 보인다. 하여 예의범절을 깍듯이 지키는 사람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가 강조되는 현 시점에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를 지키기 위하여 외출도 삼가하고 집안에서만 지내려니 일상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는 수없이 얼마 전부터 평소엔 인적이 드물어 찾지 않았던 마을 뒷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며칠 전 일이다. 한적하고 조붓한 산길을 오를 때다. 저만치 반대편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한 패거리의 여성들이 걸어왔다. 그것도 마치 어깨동무라도 하듯 좁은 산길을 나란히 일렬로 늘어선 채 마스크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곤 침까지 튀기며 깔깔거리고 웃는가하면 큰 소리로 수다를 떨기도 한다.

하는 수없이 그녀들의 무리를 피하여 길섶으로 한 발 물러서자, 자기네들을 피하는 내가 야속 했나보다. 곱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잠시 째려본다. 물론, 자연이라는 열린 공간에선 마스크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마주보며 걸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비좁은 길에서는 비켜 서 주는 게 예의 아닌가. 그러나 그녀들은 그런 예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들인 듯하였다. 내가 산길을 멀리까지 오르는 동안 내내 그녀들이 큰 소리로 떠드는 수다소리가 메아리로 들려왔다. 그 말 속엔 누군가를 험담하는 대화가 전부여서 듣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산에서 만난 그녀들은 집안에 들어가면 분명 아무개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들 아닌가. 아무리 여자가 나이가 들수록 남성 호르몬의 증가로 여성성을 잃는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예의마저 잊어서야 되겠는가. 사람은 타인 앞에서 행하는 언행에 의하여 자신의 초상화를 세밀하게 그려놓는다는 사실쯤은 기억하였으면 한다. 얼마 전 친정집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그 청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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