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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타인이 베풀어준 은공도 빚이다. 이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못하고 살고 있다. 빚에 대한 이야기를 논하려니 이유식 평론가가 쓴 『내가 찾은 행복의 현주소』라는 에세이집에 수록된 「빚은 싫어」라는 글 내용이 문득 떠오른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서두로 펼쳤다. 소크라테스는 유언으로 옆 집 닭 한 마리를 빌렸으니 그것을 갚으라고 했단다. 과연 그이다운 삶의 태도다. 이유식 작가조차도 소크라테스가 겨우 닭 한 마리 빚진 것 밖에 없으니 그래도 깨끗한 삶을 살았다고 자신의 책에서 그를 옹호했다.

타인에게 물질을 빌린 것만이 빚은 아닐 것이다. 어린 날 어머니 말씀처럼 남에게 진 마음의 신세도 실은 빚이 분명 하다. 남이 베풀어준 은혜를 평소 고맙게 생각하고 무엇으로든 갚으려고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절반은 빚을 갚은 셈이란 생각마저 드는 이즈막이다. 이는 요즘 매사 감사한 마음이 둔감해진 세태 탓이라면 지나칠까.

이유식 작가는 필자의 문학적 스승이다. 26여 년 전, 문단에 갓 입문해 어떤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채 홀로 작품 창작에 임했다. 이런 필자에게 이유식 작가는 당시 학창 시절 미처 배울 수 없었던 창작의 실전 및 전략 이론 등을 작품을 통해 자상히 지도해 주었다. 2년도 채 못 되어 어인일인지 마치 사자가 자신의 새끼를 벼랑 아래로 떨치듯이 스승님은 필자를 밀어냈다. 사자는 인간과 달리 자신의 모정을 억제하기로 유명한 동물 아닌가.

제 체구보다 작은 동물을 잡으러 내달리면 쫓아가 새끼를 뒷발질로 낚아 채 공중으로 한껏 날려 보내기도 한다. 고작 자신보다 못한 동물을 건드리느냐는 의미에서다. 하이에나 무리에 자신의 새끼가 포위되어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해도 이를 지켜만 볼 뿐이다. 그리곤 새끼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면 앞다리로 강하게 차버린다. 지난날 사자의 모진 모성과 다소 경우는 다르지만 스승님은 이와 흡사하게 내게 가혹하리만치 문학적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글자 토씨 한 자에도 엄하고 적확한 가르침을 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평소 단 한 번도 교육비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은 분이었다. 당시엔 그분의 노고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정답도 없는 문학을 타인에게 지도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어찌 알았으랴. 비로소 26년이 흐른 후에야 지난 시간 스승님의 훌륭한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을 절실히 느끼니, 우매함에 참으로 송구스럽다.

그때는 문단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가 각별한 관계라는 것도 미처 몰랐었다. 이게 아니어도 스승은 누구인가. 무지를 깨우쳐주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제자를 위하는 일이라면 간이라도 빼어주는 분이 스승님 아니던가. 그야말로 스승님께 개인 지도를 받으면서 예우를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우매한 자신이 못내 뉘우쳐진다. 훗날 스승님은 아둔하지 않은 제자라서 홀로 서도 된다는 판단이 선 탓에 모질게 당신 품에서 필자를 풀어주었다고 했다.

이제 스승님 자리에 서서 후학들을 양성해보니, 스승님의 태산 같은 고마움을 다시금 절감한다. 타인 글을 첨삭하며 어느 부분이 그릇된 표현인지, 글 속 작자의 사유와 관조가 왜? 수필 창작엔 필수인지, 수필문학이 인간학이라고 일컫는 연유는 무엇인지 등등을 초심자들에게 세세히 일러준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스승님은 필자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면서도 단 한 번도 귀찮아하거나 아까운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대해 조금치도 아까워 하지 않았다. 먼 곳에서 힘들게 글 한편 써오느라 애썼다는 격려의 말을 잊지 않은 스승님이었다. 이런 스승님을 떠올릴 때마다 필자 역시 지난날 그분께 진 빚을 이제라도 무엇으로 갚을까? 고민 중이나 아직도 스승님의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으니 큰 빚을 진 빚쟁이 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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