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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경찰공무원인 아버지 따라 시골 어느 소읍(小邑)에 잠시 살 때 일이다. 이곳 학교에서 여러 차례 도내 백일장을 비롯 미술 대회에서 대상에 입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웅변대회 때도 상을 수상했다. 공부 역시 잘하여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 시절만 하여도 반장은 반에서 공부 잘하고 리더십이 있는 학생이 주로 뽑혔기에 부득이 자기 자랑 같은 이 말을 언급한다.

4학년 때 반장 선거에 나섰다. 반 아이들 60명 중 다수의 표로 당당히 반장에 선출되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장 자리를 딴 아이에게 내주어야 했다. 다름 아닌 동네 유지이며 학교 육성회 회장인 아버지를 둔 아이에게 엉뚱하게 반장 직이 돌아 간 것이다. 그 애도 선거에 나섰으나 겨우 8표만 얻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날 교무실로 필자를 불렀다. 아무래도 여학생이 반장을 맡음 아이들을 이끄는데 여러모로 지장이 뒤따른다고 했다. 선생님은 필자에게 반장 직을 육성회장 아들에게 양보하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돌이켜보니 요즘 흔히 말하는 소위, '아빠 찬스'로 그 아인 학급 선거 결과와 무관한 반장을 맡게 된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담임 선생님의 그 논리가 너무 부당했다. 무엇보다 육성회장 아들이라는 명분만으로 선거 결과와 판이하게 다른 혜택을 그 아이에게 부여하는 선생님이 야속했다.

이렇듯 사회와의 어떤 약속, 혹은 정해진 법규를 무시한 채 위반과 편법,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여 요행을 거머쥐는 게 일명 '찬스'가 아닐까 하는 개인적 해석이다. 또 있다. 권력이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그 덕으로 능력 부족인 사람이 너끈히 어떤 높은 문턱을 쉽사리 통과 하는 게 찬스이기도 하다면 지나칠까. 어떤 일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결하길 바라고 자신이 목적하는 일을 쉽사리 쟁취하길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지름길을 두고 애써 힘든 길을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피나는 노력과 도전으로 좁은 문을 두드리기 예사다.

이때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로 능력을 준비 해온 사람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어 남다른 행운을 얻기도 한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그 무엇도 없잖은가. 운동선수만 하여도 어느 장르에 금메달을 획득하기 위해선 평소 극한에 가까운 운동 연습으로 실력을 다지곤 한다.

어찌 운동선수 뿐이랴. 인생 자체가 도전과 역경, 고난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느 재미 작가는 외국에서 자신의 책을 출판사 돈으로 발간하려고 의뢰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유는 인종차별 같다고 토로 했다. 그래 이에 굴하지 않고 100번까지 도전해 보겠다는 칼럼을 신문지상에서 읽은 적 있다. 이 작가도 아무리 외국이라도 그야말로 어떤 '찬스'를 썼더라면 출판사에서 주는 발간 기금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가 아니어도 암암리에 어둠 속에서 아직도 일명 '빽' 과 '연줄'이 통하고 있다면 지나칠까. '찬스'를 지닌 사람에게 혜택이 부여되고 있는 실정이 여전히 진행형이기에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말도 회자 되잖은가. 아직도 권력의 후광으로 혹은 학연, 지연, 혈연에 따른 줄타기인 '찬스'가 통하는 사회라면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 이루어졌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까. 아울러 힘없고 연줄 없는 민초들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소위 흔히 말하는 '빽'이라는 '찬스'를 악용하는 사람에 의하여 불이익을 당한다면 과연 우리나라가 밝은 사회라고 말할 수 없잖은가.

특권을 누리는 자가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사회는 부정부패의 온상이라 말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사회 안전판이 흔들릴 수도 있다. 법이 만인에게 공정하듯 사회적 혜택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쓴 소리겠지만 이참에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편법으로 세상의 모든 문을 여는 '찬스'라는 '비정상적인 열쇠' 효력 따윈 이젠 20대 새 대통령 시대에선 제발 멈췄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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