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한두 방울 살갗을 스친다. 손바닥을 하늘로 올려 빗물을 받아본다. 빗방울의 감촉 이게 얼마 만인가. 학수고대하던 비다. 오랜 가뭄으로,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고 대지가 거북이 등가죽처럼 갈라지는 걸 뉴스에서 보았다. 빗방울이 점점 많아진다. 만인이 원하는 비가 내린다. 기다리던 단비다. 다행히…
여기는 백골산, 아니 백골산성이다. 나는 백골산성 망루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다. 지금은 대전시 동구 신하동. 백제 땅도 아니고 신라 땅도 아니다. 성을 차지하려고 다툴 사람도 없이 그냥 우리 겨레붙이가 함께 사는 대전광역시 신하동 뒷산이다. 누구도 가릴 것 없이 어느 때를 따질 것도 없이 여기에 올라 올…
너를 떠나보내는 이 마음 한량없이 무겁기만 하구나. 어찌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총총 떠날 수가 있단 말이냐? 서둘러 내 곁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너에 대한 무관심이 빚어낸 일인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 또한 겹쳐오는구나. 너는 누가 뭐래도 나에게 일생을 바친 충직한 애마였단다. 언제 어디든 가자고 하면…
옛말에 홍수보다 가뭄이 낫다고 했다. 물난리가 나면 다 떠내려가고 남는 게 없지만, 가뭄 뒤에는 작황은 좋지 않지만, 과일들은 훨씬 맛이 좋기 때문이니 그나마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애태우는 가뭄 덕분인지 올여름의 수박 참외는 참으로 달고 맛있다. 104년 만의 극심한 가뭄으로 물왕 저수지마저 바닥…
분쇄기에 커피콩을 갈던 남편의 낯빛이 좋지 않다. 늘 하던 일인데 오늘따라 커피콩을 넣었다 꺼냈다 분쇄기 날을 뺐다 끼웠다 하는 등 몹시 분주해 보인다. 그냥 두었다가는 오늘 안에 커피 마시기 어려울 것 같아 가보니 커피콩이 문제였다. 이제껏 한쪽 면이 평평하여 플랫빈이라 불리는 원두커피를 마셨는데…
역시나 녀석을 찾고자 뒤적인다. 나는 생선 조림을 먹을 때면 으레 녀석을 제일 먼저 찾는다. 날것의 싱싱함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그의 남다른 맛을 나의 혀는 여전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씹는 맛도 없는데 무엇이 그리 좋아 찾느냐고 말할지도 모르리라. 그것은 무의 맛을 진정 모르는 사람의 소리일…
어느 일요일, 조반상을 받으신 아버지는 아들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 때 나는 아버지의 소망을 다 알면서도 엉뚱한 말로 늙으신 아버지를 어렵게 했다. "아버지, 어디 편치 않으세요?""아녀.""그럼 무슨 일 있으세요?""아녀, 몸이 왜 이렇게 근질근질한지 몰러. 오늘 바쁘냐?"이쯤에서 얼른 아버지 속내를 알아차…
화산 폭발하는 모습이 이러할까. 슬레이트 지붕을 받치고 있던 지지대를 철거하자 켜켜이 쌓인 먼지가 한꺼번에 용솟음친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보았다면 집에 불이 났거나 보일러 고장으로 터진 배관 사이에서 나오는 수증기쯤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사람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오후 시간이어서 다…
성급한 여름은 가지마다 신록을 입히느라 분주하다. 문학 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지자는 회장님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였다. 해는 벌써 기울어 사방이 암흑 속으로 '무너미 청국장' 이란 소박한 이름의 보리밥집을 찾았다. 식당에 들어서자 우리를 환영이나 하듯 개구리들이…
잉크 빛 새벽이 지워지며 아침이 열리는 시간이다. 나무 사이에 서 있던 노란 나트륨 등도 소임을 다 한 듯 노란빛이 점점 흐려진다. 연휴라 늦잠을 잘 요량으로 알람도 끄고 잤는데 눈을 뜨니 새벽 다섯 시다. 주말에다 공휴일까지 낀 오늘 같은 날은 아주 늘어지게, 햇살이 유리창을 찌를 때까지 늦잠 자도 누구…
다산 선생은 역사를 인용하지 않은 글은 시가 아니라고 했다. 역사의식이 주춧돌로 놓이지 않은 글은 문학이 아니란 말이다. 먹고 사는 이야기, 술 마시고 춤추는 풍류만 담은 글이 무슨 문학이냐고 개탄했다. 문학이란 그릇에는 뼈아픈 당대의 고민을 담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했다. 부닥치는 문제 해결의…
가정의 달을 앞두고 어느 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어버이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10명 중 7명이 현금을 선호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현금도 좋겠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이면 더욱 좋으리라. 어린이날, 어버이날, 결혼기념일, 종류도 많고 어떻게, 얼마만큼의 선물을 할까 망설이게 되는 경우도…
올봄 바로 길하나 건너 동네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삿짐을 싣고 오던 날, 유독 벚꽃이 바람에 흩뿌렸다. 십여 년만에 살던 집을 비우는데 꽃비는 나비처럼 너울대며 눈이 부시다. 마지막 텅 빈 집을 다시 돌아보려니 울컥 가슴이 치민다. 참 많은 우여곡절을 보낸 세월이었지만 따뜻한 안식처, 정든 둥지였다. 인…
노인세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빨간색을 선택하는 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거금으로 과감하게 빨간 바바리코트를 장만했다. 남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닐 진데 옷장에 걸어 놓고는 두세 번 입고 보관만 하고 있다. 그 코트를 입고 나가던 날은 쑥스러워 지인들에게 "나 최후의 발악을 하고…
어느새 해가 많이 길어졌다. 퇴근 시간이면 깜깜하던 하늘이 7시가 다 되었는데도 환하다. 옆 단지 아파트의 장터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4월이지만 윤달이 들어 아직 쌀쌀한데 성미 급한 목련은 벌써 꽃을 피웠다. 벚꽃 나무에 맺힌 꽃봉오리도 옹골져 금방 터질 것처럼 탱탱하다. 늘 차를 타고 지나다니던 길이…
그대여, 남녘에 홍매화가 피었다고 합니다. 여기는 아직 지루한 겨울인데, 봄꽃을 피웠다고 하니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려요. 그곳은 머나먼 거리인지라 혼자는 엄두를 못 내고, 그저 그리움에 목을 메인 게 몇 날 며칠인가요. 차일피일 미루다가 불혹을 훌쩍 넘겨버렸지요. 일만 하다가 나이만 먹어버렸다고 중…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면서 오늘 돌아오기로 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받는다. 그런데 누구랑 함께 있는 분위기이다. 청주에 도착했으면 내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데리러 가겠노라고 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안 오셔도 돼요."말투로 보아 사양하는 수준이 아니다. 완벽한 거부이…
60년 만에 돌아온 흑룡의 해라고 해서 임산부들은 기대가 크다. '흑룡의 해에 결혼하면 잘 산다.' '흑룡의 해에 아기를 낳으면 좋다.' 등 소문도 분분하다. 그래서일까. 꽃피는 춘삼월을 앞두고 선남선녀의 새 출발을 알리는 결혼식 초대장이 심심찮게 날아온다. 꼭 흑룡의 해가 아니어도 백년가약을 맺는 자리에…
지면 불리한 세상인가. 가까운 친구가 예전보다 내 성격이 좀 급해진 것 같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자판기 커피 눌러놓고 손 넣고 기다리다 튀는 커피에 손을 데는 모양새다. 언제부턴지 무언가 조급하게 앞만 보고 뛰다가 아차 싶은 나를 발견한다. 아마도 머문 자리가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들과의 상황이 바뀌…
겨울은 너무 길다. 이제 갔나 싶으면 찬바람이 웅크린 몸을, 시린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그러나 끝내는 자연의 섭리 앞에 잠깐 머물고 갈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을 맞으며, 하얀 눈 위에 낙엽을 뚫고 피어있을 설연화(雪蓮花)를 찾아 나서야겠다. 설연화(雪蓮花)를 좋아하기 시작한…
베란다에 가득 찬 볕살에 눈이 부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분으로 꽉 차있던 자리에 햇발이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같이 이름 있는 날 들어온 화분과 화원을 지날 때마다 사들인 화분이 오십 개가 넘었다. 아침저녁으로 화분을 들여다볼 때면 흐뭇했다. 그러나 예쁜 꽃을 보며 호사를 누…
그의 몸을 더듬는다. 결이 참 곱다. 내가 만지고 있는 자리가 그의 허리쯤일까, 아랫도리일까. 아니 어디든 어쩌랴. 내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나의 손은 다시금 그의 몸뚱이를 위에서 아래까지 천천히 쓰다듬는다. 몸을 만지다 욕심이 더한다. 그의 마음을 읽고 싶은 것이다. 그를 품에 안아 숨결을 느끼…
임진년 새해 초하루이다. 해맞이를 하려고 마을 앞 구룡산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엄청나게 추운 데다가 등산로에 눈이 얼어붙어 거의 기다시피 올라갔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미끄럼을 타다시피 했었지만, 새해의 찬란한 태양을 맞은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늘은 회색빛 하늘이 산봉우리까지 내려앉았…
모니터에는 1962년 최고의 스타로 불리던 최무룡 김지미 주연의 영화 주제가 '외나무다리'의 전주곡이 흐른다.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꽃 사이로 나비가 나는 모습은 정말 내 고향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복사꽃 능금 꽃이 피는 내 고향,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다리……. 의도적인 일은 아니었다. 형의…
[충북일보] 항공정비(MRO) 산업 육성을 위해 조성 중인 청주국제공항 인근 에어로폴리스 개발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 충북도는 에어로폴리스 1·2·3지구를 묶어 항공산업 혁신성장 클러스터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19일 충북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과 북이면에 에어로폴리스를 조성하고 있다. 1지구는 13만2천231㎡(4만평) 규모로 조성 공사가 완료됐다. 경자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3개 필지 중 2개가 헬기 정비업체에 분양됐다. 2019년 10월 도와 투자협약을 맺은 이들 업체는 조만간 착공할 예정이다. 충북경자청은 남은 산업용지에 관련 업체 유치하기 위한 공모를 준비하고 있다. 2지구는 올해 준공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면적은 40만9천917㎡(12.4만평)이다. 이주자 택지 조성도 마친 상태다. 이곳은 1지구와 연계해 항공정비 산업을 육성할 클러스터로 꾸며진다. 항공정비와 부품제조 기업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충북경자청은 기업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입주 의사를 밝힌 관련 업체는 1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지구에는 119항공정비실도 건립된다. 2022년 3월 도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소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청주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차량을 들이받은 뒤 카페로 돌진한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청주상당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A(60대)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6일 밤 9시 30분께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다가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뒤 카페로 돌진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이날 A씨는 용암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차량을 운전하다가 주차된 차량 3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후 사고 현장을 이탈한 A씨는 약 1㎞ 운전하다가 차량 4대를 추가로 들이받고 인근 카페로 돌진한 뒤 멈춰 섰다. 이 사고로 카페 출입문과 가구 등이 파손됐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경찰이 음주 측정을 진행한 결과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91%로 면허 취소 기준(0.08%)을 훨씬 넘은 만취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경찰에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임성민기자
[충북일보] 오곡이 풍성한 추석이 다가왔다. 누구나 풍요로울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손을 잡아야 주어야 할 이웃이 많다. 이런 이웃을 위해 추석 연휴에도 나눔과 봉사를 말없이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가 있다. 30여년간 일상의 나눔을 이어오고 있는 최종길(48) LG에너지솔루션 오창2 업무지원팀 책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중학생때인 15세부터 일찌감치 나눔의 의미를 알고 몸소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최 책임은 "당시 롤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보육원에서 체험활동을 온 5살짜리 아이를 케어했던 적이 있다. 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쉬는 시간에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게 됐다"며 "당시에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5살 아이와의 만남 이후 그의 시선은 달라졌다고 한다. 성인이 돼 원료 공장에 입사했던 그는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단순히 돈만 후원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가 아이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와 손주 두 명이 사는 조손가정이었다. 당시 할머님을 설득해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이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