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쁜 꽃을 보며 호사를 누리는 만큼 관리하는 것이 일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화분을 들여놓거나 분갈이하는 일이 어려웠다. 또, 추운 겨울에는 화초가 얼어 죽는 일도 있었다.
내 생활이 나태해지면 화초도 덩달아 게을러졌다. 이파리도 시들고 꽃도 피우지 않았다. 하나, 둘 말라비틀어지는 화초를 볼 때마다 화분정리를 해야겠다고 벼르다가 작정하고 베란다로 나섰다.
우선, 화분에 꽂혀있는 꽃손을 모두 뽑았다. 기린초와 베고니아, 수선화 등, 가늘고 여린 꽃나무가 쓰러질까 봐 세워놓은 꽃손이 제법 많았다. 플라스틱이나 철사로 된 것과 다급할 때 임시로 꽂아 쓴 나무젓가락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요긴하게 쓰이던 꽃손은 묶어 따로 두었다.
몇 차례 끙끙거리며 내다 놓은 화분을 지나가던 동네 아줌마들이 한개 두개씩 들고 갔다. 어떤 이는 나한테 화분을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하더니 아예 열댓 개를 가져가는 이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많던 화분이 순식간에 모두 없어졌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 정말 신기했다. 요즘은 버리는 일이 더 큰 일이라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고민스러웠는데, 뜻밖에도 쉽게 해결된 것이다. 옮기다 깨진 화분을 버리고 들어오며 나한테 쓸모없어진 물건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화분을 없애고 나니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애가 집 안이 훨씬 너르고 깨끗해 보인다고 좋아했다. 화초 때문에 속 태우는 나를 못마땅해하던 남편도 아주 잘했다고 했다. 서운해할 줄 알았던 두 사람이 좋아하니 스산하던 기분이 좀 나아졌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화초를 좋아했다. 친정 부모님도 꽃을 좋아하셨다. 자랄 때 집 마당에 꽃이 많아 우리 집을 꽃집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인지 길을 걷다 작은 풀꽃을 봐도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이른 봄, 돌 틈에 피는 제비꽃을 보면 집에 데려오고 싶어 안달했다. 그런 내 성격을 아는 남편이 가끔 종이컵에 제비꽃을 심어 내밀기도 했다.
화초를 좋아하다 보니 마치 화초가 집주인 같았다. 한 개, 두 개 늘어나던 화분이 거실을 넘어 안방까지 차지했다. 여름철엔 모기가 생겨 안 좋은 점도 있었지만, 꽃이 필 때면 참 좋았다. 눈을 뜨면 콧속으로 전해오는 향기와 황홀한 자태에 시름을 덜곤 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색색깔의 바이올렛은 한 번 피면 꽤 오래도록 지지 않았고, 까다롭게 구는 프리지어의 향기는 잠결에서도 매혹적이었다.
박종희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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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서울시음식문화개선 수필공모전 대상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 등 다수
△ 저서 '나와 너의 울림' '가리개'
△ 충북여성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 사무국장
△1인1책 펴내기 지도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