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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무수히 오래전 초등학생 때였다. 해마다 그래왔듯 한 학년을 마무리하며 정든 친구들과 이별의 시간을 가진 적 있다. 선생님의 반주에 맞추어 이별의 노래를 부르며 한 학급 전체가 눈물바다가 된 적이 있다. 너무 어려서인지 감정이 메말라서인지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가서 같은 반이 되지 않더라도 교내에서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이성적인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 전체 아이들이 울고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에 맞춰 덩달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슬프지 않았기 때문에 울면서도 어떻게 구슬피 울면 내 모습이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보일지 생각하며 울 정도였다. 감정보다 보이는 모습에 한때 신경을 쓰던 때였다.

이 무렵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그 친구는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고 양가에서 결혼 이야기도 오갔다. 그러나 결국 결혼에 이르지는 못했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컸으나 결혼이란 둘만의 관계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가 집안의 의견도 맞아야 한다. 어른들의 의견이 맞지 않아 그렇게 둘의 관계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슬픔에 잠긴 그 친구를 만났다. 친구를 만나러 가며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길 바랐다.

친구는 모든 것을 잃은 표정으로 나를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 그 사정을 대략 알고 있었기에 우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나 역시 저절로 눈물이 났다. 이성적인 위로의 말보다 울분을 토하는 친구를 보며 함께 감정이 이입되어 몹시 슬펐다. 나도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슬픔의 감정을 공감하게 된 듯하다. 격하게 감정을 쏟아낸 친구는 한결 후련해졌을까?

그러한 일을 겪은 후, 친구는 새로운 연인을 만나며 상대에게 온 마음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상처를 입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패막과 같았다. 친구는 점점 눈물이 메말라 갔다. 감정이 무뎌져서가 아니었다.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 내면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삶 속에서 모진 슬픔을 겪고 더 단단해졌으며 소소한 감정에 큰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받은 고통과 그것을 극복하며 더 크게 성장한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일본에는 사는 물의 양만큼 성장하는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다. 이 물고기는 좁은 어항에서 자라면 손가락 정도의 크기까지 자라지만, 드넓은 강물에서 자라게 된다면 1m 이상 자란다고 한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 아픔과 슬픔을 겪을 일이 많지 않지만, 인생을 살아갈수록 힘든 일과 마주하게 된다. 그 속에서 흘리는 눈물과 고통은 인간을 성장하게 한다. 오히려 시련과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행복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다가올 힘든 일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려움 속에서 그것을 감내하며 얻어낸 많은 이들의 드넓은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숱한 눈물방울들과 고통이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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