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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04.17 14:15:28
  • 최종수정2022.04.17 14:15:28

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1990년대 밥 로스(Bob Ross) 가 진행하는 '그림을 그립시다(원제 :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를 보며 빠르고 쉽게 그리지만, 실수나 머뭇거림 없이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는 듯한 신기함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한 경험이 있다. 오랜 연습에서 나온 능숙함이었다. 시간이 흘러서도 그림 진행을 보며 즐겁고 행복했던 감정들이 남아있다. 그의 작품을 따라 한다고 해도 비슷하게는 할 수 있을지언정 그와 같이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밥 로스의 그림 진행에 열광했다. 놀랍게도 밥 로스는 미술 전공을 하지 않았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지만, 중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와 목수로 일을 하다 군인으로 전향했다.

군 복무를 하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처음으로 알래스카 지역의 눈 덮인 산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작품의 주제로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아울러 작품을 판매하기도 했는데 작품 판매 수입이 군인의 월급보다 높아지자 그림에 몰두하고자 전역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TV 프로그램 그림 쇼 진행자였던 윌리엄 알렉산더를 찾아가 빠르게 유화를 그리는 기법을 배우고 그 회사에 취업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밥 로스의 재능은 이내 방송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서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잘 알려진 '그림을 그립시다'이다. 1990년대를 보냈던 아이들은 만화영화보다 더 손꼽아 기다리던 프로그램이었다.

대부분 일반인과 미술 취미생은 유화의 입문 자체를 어렵게 생각한다. 마르는 시간이 며칠씩 걸릴 뿐 아니라 마른 후 덧칠을 하는 과정에서도 심사숙고해야 원하는 작품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유화 작업에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성취감이 있지만 사실 처음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운 매체다. 밥 로스는 이러한 대중의 고충을 인지한 듯 빠르게 유화를 그릴 수 있는 기법을 대중 앞에 선보였다.

예를 들어 나뭇잎을 유화로 나타내고자 할 때 보통의 경우 잎을 하나하나 그려 나간다면 밥 로스의 경우 커다란 붓에 물감을 건조하게 묻혀 캔버스에 찍어나가는 방식을 구현했다. 햇빛에 반사된 시냇물, 멀리 보이는 얼음산 등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나이프를 이용해 반짝이는 부분을 빠르게 찍어내는 기법을 사용했다. 단시간 내 작업을 이끌어 나가며 사실성 있는 놀라운 결과물에 많은 이들이 새로워했다. 특유의 기법과 함께 그가 그려낸 자연주의적 풍경과 부드러운 진행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참 쉽죠?"

"주위를 둘러보세요.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남겼던 따스한 말들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밥 로스의 그림 진행을 계기로 미술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술에 즐거움을 부여하고 잘 그리기보다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으로 미술의 전환점을 맞았다. 1990년대 당시의 시청자가 아직 그를 그리워하는 까닭은 오랜 연습과 피나는 노력에서 우러나왔기에 어려운 그림을 단시간에 그려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본인의 노력에 앞서 시청자를 우선 생각한 겸손함이 담겨있기에 그림을 그리며 전했던 메시지가 더욱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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