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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5.27 16:40:26
  • 최종수정2020.05.27 18:52:12

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3여 년 전이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못 보던 한 고양이를 봤다. 밖에서는 흔치 않은 샴고양이 계열이어서 특히 기억이 또렷하다.

 털이 윤기가 나고 사람이 지나가도 피하지 않았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집에서 키우다 길을 잃은 고양이가 아닐까 생각됐다.

 2년간 타지에서 생활하다 다시 예전에 살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그 고양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또다시 아파트에서 마주하게 됐다.

 예전에 보았던 고양이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앙상하게 마른 몸과 윤기를 잃은 털뿐만 아니라 한쪽 귀가 상처를 입어 반쯤 괴사 돼 있었고 입 주변도 몹시 지저분했다.

 고양이 앞에는 아이들이 먹다 흘린 핫도그 조각이 놓여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별안간 비둘기 떼 대여섯 마리가 고양이를 맹공격하듯 날아들었다.

 비둘기가 가까이 오는데도 체념한 듯 피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결국 핫도그 조각은 비둘기의 몫이 되고 말았다.

 며칠 후, 장을 보러 나가려다 또 그 고양이를 봤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먹을 것이라도 주기 위해 가방을 뒤져 과자를 찾아 고양이에게 꺼내줬다.

 그러나 그 고양이는 먹지 않았다. 사람이 앞에 있어 겁이 나서 먹지 않는 것인가 싶어 자리를 피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소문에 의하면 길을 잃었거나 유기묘로 추정되며 아무거나 먹지 않고 고급 고양이 사료를 주면 먹는다고 했다.

 오래전 대학원을 다니며 교직 공부를 병행하고 있을 무렵 아는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아주 성실하고 반듯했으며 자존심도 강했다.

 본인이 성실한 만큼 목표의식도 높았기에 서울지역 명문대학에 지원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몇 년간의 입시 실패를 거듭해 결국 원하지 않는 대학을 다니게 됐고 이곳에서나마 열심히 공부해 교직 이수를 하게 된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 오랜 세월 동안 임용고시에 집중했지만 미세한 점수 차이로 번번이 낙방하고 말았다. 실력이 비슷한 경쟁자들과 겨루는 시험이기 때문에 합격이 쉽지 않았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 언니의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학원 강사나 기간제 교사를 병행하지 않고 오로지 임용고시에만 집중했다. 보통 준비 기간이 매우 길어지면 경제활동을 병행하며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 사정 앞에서도 자존심은 무척 강한 언니였기 때문에 잘 되기를 늘 응원했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누구나 자존심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다소 힘든 생활을 하기도 한다.

 자존심은 어떤 방향으로 조절하는가는 행동에서 드러난다. 힘들더라도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파트의 샴고양이를 보면서 자존심이 강한 그 언니가 떠올랐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오갔다.

 일상이나 사물에 관련된 사소한 일이나 혹은 동물의 행동 습성에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더불어 고양이에 대해 알지 못해 도와주지 못한 점, 조심스러운 마음에 그 언니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내 모습 역시 발견하게 됐다.

 집안에서 고급 사료를 먹으며 지내왔던 샴고양이와 명문대를 꿈꿨고 원하는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그 언니의 모습에서 현실과 이상은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됐고 그 차이를 어떻게 좁혀갈 것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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