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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비밀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 부자다'라고 한 어느 소설가 말을 신뢰할 수 없다. 삶을 살며 여럿 비밀이 있었으나 과연 그동안 마음이 부자였을까· 마음이 넉넉하기는커녕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싸아 하였다. 그중 한 가지 비밀을 꼽는다면 신혼 초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일이다. 비록 소소한 일이나 당시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내 딴엔 비밀임에 틀림없다.

대 기업 간부였던 남편은 직장에서 노조 활동을 이유로 갑자기 해고를 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첫아이 임신에 의한 심한 입덧은 나의 생기(生氣)를 앗아갔다. 이를 안 시어머니께서 내 처지가 안쓰러웠나보다. 우리 내외가 새로운 직장을 찾아 시댁을 떠날 무렵, 시어머니는 남편 모르게 몇 푼 안 되는 돈을 내게 쥐어주었다.

시댁을 떠날 때 수중에 전셋돈만 지니고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그 때 모 도시 근교에 손바닥 만 한 전세방을 한 칸 얻어 생활 했다. 마침 계절은 가을이었다. 날이 갈수록 심한 입덧은 나를 몹시 괴롭혔다. 한바탕씩 토악질을 하고나면 눈앞이 노래지고 현기증마저 일었다.

만추로 치닫던 어느 가을날, 꽃보다 고운 단풍에 유혹돼 집안을 나서자 건너편 길가에 손수레 한 대가 보였다. 그 곁에 노점상인인 듯한 남정네가 연신 흰 장갑 낀 손으로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홍옥 사과를 닦고 있다. 그 모습에 갑자기 사과가 먹고 싶었다. 새콤달콤한 사과 한 입 베어 물면 그토록 끈질긴 입덧쯤은 금세 가실 듯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입사한 직장에서 미처 첫 월급도 받지 않은 상태라서 처음엔 사과 구입을 망설였다.

그 때 문득 시어머니께서 내 손에 쥐어주었던 돈이 떠올랐다.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상금으로 묶어놓은 돈 아닌가. 그러나 가을 햇빛 아래 윤이 반들반들 나는 빨간 사과에 군침을 삼킨 나는 그만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가장 실하고 싱싱한 사과만을 골라 기어코 한 상자를 샀다. 그리곤 그것을 부엌에 감춰두고 남편에게 맛도 보이지 않은 채, 사십 여 개 사과를 며칠 만에 혼자서 다 먹었다. 덕분에 그토록 고통스럽던 입덧 증세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듯 지난 시간 가난에 뼈아픈 기억이 배인 사과다. 이즈막도 사과를 바라볼 때마다 사과 한 상자를 남편 몰래 구입하여 혼자만 먹었던 지난 일이 떠오르곤 한다. 어디 이뿐인가. 사과를 보면 비운(悲運)에 처했던 영국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생각나는 것은 어인일일까·

다 알다시피 천재 수학자 앨런튜링(1912-1954)은 복잡한 수학 이론을 바탕으로 짜인 암호 체계와 논리학에 능통했던 인물이다.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군 암호 통신 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여 전쟁을 연합군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 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컴퓨터 원형을 완성, '컴퓨터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그가 1945년 고안해 낸 튜링머신이 그것이다. 이것은 초보적 형태에 컴퓨터로써, 복잡한 계산과 논리 문제를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수학 천재이자 컴퓨터 아버지로 불리던 그에게도 남모를 비밀이 있었다. 동성애가 그것이다. 1952년 당시 영국에선 동성애는 범죄나 다름없던 시절이었다. 비밀은 밝혀지기 마련이어서 비밀이라 했던가. 튜링에 동성애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그는 징역 십 년 형 대신 스스로 화학적 거세를 선택했다. 그리곤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곤 하였다. 이에 상심이 컸던 그는 그 후 이년 뒤 청산가리를 사과에 직접 넣어 그것을 먹고 자살했다.

이렇듯 사과는 만유인력을 정립한 뉴턴에 사과와 더불어, 수학계에 유명한 사과로 알려졌다. 스티브잡스가 애플 창업당시 동성애자였던 튜링을 기렸다는 일화가 있다. 한 입 베어 문 무지개 빛깔에 사과 형태를 회사 로고로 만들었다는 게 그것이다. 내겐 오늘날 예쁜 딸에 심신을 이루게 한 고마운 사과로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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