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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12.18 16:46:36
  • 최종수정2024.12.18 16:46:36

홍성란

수필가

금강산이 아무리 절경이라도 생각만으로 그리는 것과 직접 찾아가 참 경치를 그리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생각은 관념이고 직접 가보는 것은 실제 사생(寫生)이기 때문이다. 진경산수화는 말 그대로 진짜 있는 경치를 그린 그림이다. 따라서 진경산수화는 지극히 국토를 전제로 제작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국토애(愛)가 자기애로부터 비롯되는 자긍심의 발로이고 자긍심은 확고한 독자 이념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라 그렇다.

지난 가을,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진경산수화(眞境山水畵)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이날 전시에는 풍속화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의 진경산수화도 몇 편 전시되었다. 이 중 정선의 '풍악내산 총람(楓岳內山總覽)'을 비롯, 5점을 유심히 보았다. 단순하고 담백하며 거침이 없다. 그래서인지 복잡하고 다양한 기법보다 오히려 보기도 편하고 시원하다. 그 외에도 제자인 심사정, 겸재의 씨앗인, 김홍도, 이정의 그림에서 지금은 가볼 수 없는 산하를 볼 수 있었다.

산수화는 흔히 풍경화로 이해하기도 한다, 물론 세부 사상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있지만 형식상으로는 일치한다. 그런데 산수화라고 모두 진짜 풍경이 아니다. 이를 비교할 수 있는 대표적 두 작품이 있다. '몽유도원도'와 인왕제색도다. 전자처럼 개인의 바람을 자연에 담은 관념화가 있는가 하면 '인왕제색도'처럼 직접 산을 찾아 그린 진짜 경치도 있다. 이미 분위기가 다르다. 여기엔 조선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영향과 주체적 국가를 바랐던 사대부 문인과 화가들의 가치관의 변환에 의한 것이란 생각이다. 이는 300년의 차이에도 두 작품의 분위기가 전혀 다른 연유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조선의 산수화를 논하기 전에 우린 그 뿌리부터 찾아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그 원저에는 조선의 개국(開國)사상에 있다고 본다. 조선의 개국 사상이 주자 성리학 아닌가. 성리학의 기본은 다소 형식적인 면이 있는 예와 충.효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그러니 개국 공신들을 비롯해서 양반사회에서 시와 그림은 필수 덕목이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좋은 경치를 찾아 유람하면서 풍류와 예술을 즐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외세의 침략과 압박, 중국의 속박이 이어짐을 개탄한 사대부 문인들이 정조로 시작한 서구 문명의 영향 속에서 점차 형식보다 현실의 가치관에 눈을 뜨면서 진경산수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열어 간다. 어찌 보면 진경산수화는 우리 주체를 찾아가는 근대 개혁기로의 발돋음이라고 보고 싶다. 이는 우리 산천을 주자학의 조선화에 따른 고유색과 자주 의식의 팽배를 불러일으킨 진경산수화의 중요한 발전 요인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진경산수화는 진짜 경치뿐 아니라 주체적 정신까지 묘사해 내는 사생기법(寫生技法)의 시와 그림이라는 생각이 더 든다. 이런 생각은 풍악내산 총람(楓岳內山總覽)이라는 작품에서 강렬하게 다가왔다. 35세 화명(畵名)을 발했던 겸재가 70 노구의 몸으로 그린 작품으로 비단 바탕에 가을철 내금강산(內金剛山)의 경치를 압축해 그린 족자다. 사진기나 망원경이 없던 시대에 어떻게 수백 수천의 봉우리를 한 폭에 담을 수 있는지. 금강이 가슴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겸재 아니고는 그릴 수 없는 작품이다. 더구나 명승, 고적마다 그 이름을 써놓아 누구라도 찾아가기 쉽게 해놓은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우리 산하를 사랑했고 따듯했는지, 마음을 알 것 같다.

때로는 유행에, 때로는 새로운 문화에 유혹되어 몰려가다가 어느 지점이 지나면 다시 신선한 무엇을 쫓다가 낯선 파도에 '나'를 잃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누구의 아들과 딸인지 생각하자. 아무리 신산한 가족이라도 거기엔 '나'와 우리'라는 주체가 있음을 잊지 말자. 진경산수화는 나와 우리를 일깨우는 그림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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