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9.06.26 17:01:03
  • 최종수정2019.06.26 17:01:03

김혜식

수필가

광어가 토막 난 제 살점을 베고 하얀 접시 위에 누웠다. 갑작스런 죽임에 비루悲淚하듯 옆에 놓인 잘린 대가리도 선명한 핏빛을 머금은 아가미를 연신 뻐끔 거린다. 생에 대한 미련이련가. 살점 또한 항거抗拒로 미미한 떨림을 일으킨다. 이에 질세라 생선 눈알도 잠시 떴다 감았다하더니 이내 눈꺼풀을 힘없이 닫는다. 마치 바닷가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 같은 착각마저 든다. 절로 도는 군침에 젓가락을 생선회로 가져 갈 때다.

'까르르르' 한바탕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식당 안 가득 울려 퍼진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다보니 육십 대 중, 후반의 여인 네 명이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있다. 여인들 곁에 서, 너 명의 남정네들 모습도 보인다. 눈여겨 보아하니 부부인양 남녀가 제대로 짝을 이뤘다. 이 때 갑자기, "자기야! 생선회가 싱싱하다. 많이 먹어." 특유의 콧소리에 애교를 섞은 어느 여인의 음성이 또 나의 시선을 그 쪽으로 유인 한다. 요란한 옷차림의 여인이 생선회를 초장에 찍어 곁의 남정네에게 다정스레 권하는 모습이 보인다. 비록 얼굴은 잔주름으로 뒤덮였으나 날씬해 보이는 몸매에 짧은 치마, 웨이브 강한 긴 머리는 마치 이십대 청춘을 방불케 한다. 멀리서 봐도 온몸을 휘감은 번쩍 거리는 장신구가 참으로 현란하다.

몇 순배(巡杯) 술을 나눠 마신듯 앞좌석의 남녀들 얼굴이 불콰하다. 서로 뒤엉켜 포옹을 하고 볼에 입을 맞추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든다. 부부사이 치고는 행동이 너무 지나쳐 바라보는 내 쪽이 왠지 민망하다. 그들 대화를 자세히 귀동냥해 들어본즉, 실은 그 남녀들은 부부 사이가 아니었다.

고스톱 이야기, 모 술집 이야기, 낯 뜨거운 육담 등등 그들 대화를 조합해 볼진대 건전한 모임은 아닌 듯하다. 이유야 어떻든 노년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인맥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 대화로 미뤄보아 가정이 있는 유부남, 유부녀들 아닌가. 옛날과 달리 요즘 세상은 남녀 간 교류가 자유롭고 빈번한 게 허물인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저네들은 엄연히 가정이 있는 가장, 주부로서 빗나간 일탈이 아닐까 하는 기우마저 든다.

육십 대의 연령은 산전수전 다 겪은 내면이 무르익은 나이요, 노년층에 속한다. 옛날로 따지자면 어르신의 위치에 이른 연령이다. 더구나 대중이 많이 모인 식당 안에서 입에 담지 못할 육담과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행위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굳이 교양과 지성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쯤의 연령에 이르면 공공장소에서 자신이 취할 언행이 무엇인가 쯤은 알법한 연령 아닌가. 식당 안의 남녀들이 나누는 농 짓거리와 낯 뜨거운 애정 행각을 바라보며 이 들에게도 사랑이 존재할까· 갑자기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인일일까· 흔히 청춘남녀의 사랑과 성은 흉허물이 안 되지만 노인의 성과 사랑은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꺼리는 게 사실이다. 노인들의 성과 사랑을 말하면 주책없다고 일축하고 본인들도 입 밖에 꺼내길 주저한다.

하지만 요즘은 육십 대, 칠십 대는 그야말로 예전에 비하면 팔팔한 나이라고 본인들이 자부하기 예사다. 그러므로 이들도 마광수 소설가가 그의 에세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에서 밝힌 언술처럼, '살갗끼리의 접촉'을 갈망한단 말인가· 그래 이렇게 벌건 대낮부터 생선회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며 그 '부드러운 접촉 감'을 성취하기 위하여 속된 말로 작업 중이란 말인가·

그날 남녀들의 모습에서 거안제미擧案齊眉 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김질 해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밥상을 들어 눈썹에 맞추다'라는 이 말의 의미에서 아내의 헌신, 희생, 정숙함이야말로 노년의 행복한 부부 생활 척도임을 새삼 깨우친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