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효소를 담갔다. 큰 유리병에 적당히 굵고 매끈한 무 여섯 개를 넓적넓적하게 썰어 설탕과 무의 비율을 1:1로 켜켜이 얹어 꾹꾹 눌러 담고 공기가 통하도록 한지로 뚜껑을 덮었다. 언제부터인가 삶의 질을 높이는 참살이문화가 번지면서 효소 담는 것이 유행된 것 같다. 나도 해마다 매실이나 양파효소는 담갔…
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이다. 원작은 아니지만 고흐의 작품을 가까이 접한 건 처음이다. 회오리치는 듯한 별무리와 은하수 부분에 시선이 멎는다. 엇비슷한 색감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여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붓 터치를 따라 호흡한다고 생각하니 이내 기운이 솟는다. '별이 빛나는 밤'에…
자유인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영산포에 가자고 했다. 가고 싶었다. 일탈의 소망은 염치도 없이 이 나이에도 절실하다. 아직 젊음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곁길로 발을 내딛기로 하고 영산포 홍어 맛을 꿈꾸며 콧노래를 불렀다.우리는 조용한 영산강 강둑을 거닐었다. 강물은 흐르는지 괴어있…
애초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욕심이 과했었다. 이곳 남매탑에서 삼불봉을 거쳐 은선폭포 쪽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새해 첫날부터 계획을 포기하는 나약함을 보이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올라오면서 본 상황은 은선폭포 쪽으로 오르는 계룡산 등…
"세존이여, 매일 외출할 때마다 같은 외투를 걸치고, 같은 의대를 매고, 같은 신발을 신으시면서 왜 그리 정성을 다하십니까?" 석가모니가 대답합니다. "너는 내가 오늘 입는 옷을 내일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오쇼 라즈니쉬가 쓴 금강경해석의 일부 글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한치의 앞도 점치지 못하고…
4개월여 동안 숲 교육을 받게 된 동기생들과 어느덧 수료식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직장에서 퇴근 후 평일 저녁 늦도록 또는 주말까지 강행군이었던 빡빡한 수업은 꽤 벅찬 일정이었다. 돌아보면 지인의 지속적인 권유로 발을 딛긴 했지만, 수업료가 전혀 아깝지는 않았다. 그동안 내가 보이는 것이 최선…
언제부턴가 발뒤꿈치가 거칠어지고 갈라져 보기 흉했다. 쓰리고 아파 연고를 발라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각질 벗기기에 좋다는 곱돌로 문지르고 발 면도기로 밀었지만 한 번 갈라진 뒤꿈치는 까칠까칠해 스타킹을 신을 때에도 거스러미가 일었다. 발이 건강의 신호등이라는데, 혹시 내 건강이 좋지 않으니…
바람이 꽤 부는 날이야. 비를 예보했지만, 난 아랑곳없이 산중으로 느리게 걸어 들어갔지. 산길로 들어서니 나무들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온몸을 흔들고 있었어. 아니 흔든다는 표현보단 마치 몸부림을 치는 것 같았어. 그 몸짓에 땅이 흔들리는 느낌마저 들었지. 그렇게 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은 공중을 휘돌…
1. 삼도봉에서여기는 삼도봉, 드디어 산마루에 올랐다. 충북 영춘, 경북 부석, 강원도 하동(현재는 김삿갓면)이 만나는 꼭짓점이다. 봄 햇살이 따스하지만 바람에는 냉기가 남았다. 강원도 쪽으로는 화전이지만 너른 평원이다. 서너 채 초가가 눈에 띄니 배가 고프다.평원은 모두 희귀한 약초밭이다. 겨울잠을…
라디오 볼륨을 한껏 올렸다. '서로가 원한다 해도 영원할 순 없어요. 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한 가수의 노래가 지치고 피곤한 무디어진 나의 감성을 일깨운다. 중년이 넘으면 마치 기차 레일이 덜컹거리고 흘러가듯이 세월 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더니 어느덧 초겨울 길목이다. 차 유리문을 내리니 쨍한 바…
감나무에 까치가 날아와서 주위를 살피다가 재빨리 감을 쪼아본다. 감은 이내 흠집이 나고 만다. 까치란 놈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감을 쪼아서 입으로 삼킨다. 그러나 입으로 넘어가는 양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홍시가 되었다면 삼키기가 훨씬 쉬웠겠지만, 단감이니 쉬 물렁물렁해지지도 않는다. 이놈들은…
가을의 정취와 풍성함의 제일은 감나무에 새빨갛게 열린 감 풍경일 것이다. 다닥다닥 매달린 감을 바라보면 여름내 고생한 농부들도 긴 피로감을 날리며 흐뭇한 함박웃음이 절로 나오리라. 그뿐인가 잎이 넓은 감잎은 붉은색으로 물드는 단풍이야말로 풍성함을 전해주는 가을의 표상이 아닐까. 시골에는 조상…
어찌나 까다로운지 딸애 구두 한 켤레 사는데 몇 시간을 돌아다녀서야 겨우 살 수 있었다. 모양이 좋으면 굽이 높고 괜찮은 것이 있어 신어보면 치수가 없었다. 몇 군데를 다니다가 아주 마음에 드는 구두를 신고 입이 귀에 가 걸리는 딸애를 보니 중학교 때 아버지가 맞춰 준 검정 구두가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그대여, 어느새 가을입니다. 아직은 눈에 드는 것들이 푸른 것으로 성성한데 말입니다. 내 안에 가을의 느낌은 적어도 가로수가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어야겠지요. 그리고 스산한 기온이 느껴져 얇은 옷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손가락 끝이 시린 느낌이 들 무렵입니다. 무엇보다 내 눈으로 산천의 고운 빛깔을 보…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면 알게 된다 하던가. 우연히 숲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무심히 바라보았던 풀, 꽃, 나무들 하나하나를 개성 있고 의미 있는 존재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다채롭고 풍성한 세계가 거기 숨어 있었다니, 그동안 식물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부끄러워진다. 식물이 인간보다 훨씬…
뒷집에 6·25 전쟁에 참여했던 향년 여든이 넘은 참전용사가 살고 있다. 나는 감히 이 어른을 용사라 부른다.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용사와 나는 부락 모임의 회장과 총무라는 인연으로 자주 만나고 술도 가끔 마신다. 용사는 술이 거나해지면 6·25 전쟁 때 공산군과 싸웠던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이 이야기…
연포탕을 끓여 먹으라며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건네받았다. 집에 와 풀어보니 꼭지가 싱싱한 너무도 어여쁜 금방 딴 박이다. 평생 박 요리를 해 먹어보지 않아 생소하다. 먹어 없애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게 생겼다. 어린 시절 초가지붕에서 보았던 박을 바라보니 전설처럼 내려오는 흥부전이 떠오른다. '박…
창문이 환하게 밝았다. 이제 일어나서 집 앞 우물에 나가서 쌀을 씻어야 한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가위 명절 아침인데 벽지학교 총각선생인 내 모습이 너무나 청승맞아 보일 것 같았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 '엊저녁에 씻어 놓을 걸, 아니 밥을 아예 지어 놓을 걸, 아니 그냥 한끼 굶으면 어떨까.'…
출근준비를 하던 남편이 하얀 편지봉투 세 장을 들고 온다. 주말에 직원과 친구 딸 결혼식에 갈 축의금 봉투를 준비하려는 것이다. 마침 잘됐다며 나도 지인 아들 결혼식에 전해 줄 봉투 하나를 부탁했다. 요즘은 계절과 관계없이 결혼하니 청첩장이 오는 시기도 때가 없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니 여…
문(門)은 소통의 다른 이름이며 표현이다. 일단 문 앞에 서면, 그 안에서 펼쳐질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오감이 발동한다. 그렇다고 그 안에서 내가 상상했던 것들이 똑같이 전개되진 않는다. 아무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을 때도 더러 있다. 그저 문턱을 넘기 전 문 앞에서 자유로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하늘은 세상을 무너뜨릴 기세로 장대비를 퍼붓는다. 우리는 진천 이원아트빌리지에 그야말로 아트를 체험하려고 달려갔다. 길은 노아의 홍수를 맞은 것처럼 온통 물바다이다. 승용차는 노아의 방주가 되어 물을 가르며 달렸다. 한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버마…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 그나마 세력도 약한 놈이 하얗게 올라와서 보기에 영 마땅찮다. 머리 염색하는 것을 게을리하니 이놈들이 더 기승을 부린다. 머리에 조금씩 바르기 시작한 염색약이 이제는 머리 전체에 발라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에는 하얀 머리카락이 올라오면 세월이 어느새 이렇게 흘렀나 하…
충격이 온몸, 머리부터 발끝까지 동시에 전해졌다. 난데없이 바닥에 정곡으로 찧은 엉덩방아로 꼬리뼈의 아픔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사무실 여직원은 걸려온 전화에 열중하느라, 순식간 일어난 촌극을 눈치 채지 못했다. 업무를 보려고 사무용 탁자에 앉으려다 이동식 의자가 갑자기 뒤로 미끄러져 나가는…
딸이 보내준 티켓을 받아 46주년 결혼기념일에 충주 파크호텔로 여행을 떠났다. 늘 살갑게 효도하는 딸의 효도를 받을 때마다, 양심이 찔리는 게 참 많다. 위아래로 오빠와 남동생 때문에 자랄 때, 나도 모르게 편애하여 손해를 자주 본 딸이다. 그런데 출가해서 친정 부모 걱정은 제일로 많이 하는 편이니 늘 미…
조카의 결혼날짜를 잡고 나서 내가 함으로 받았던 여행 가방을 꺼내보았다. 함 받는 날 눈물을 쏙 빼게 했던 가방은 이젠 들고 다니기조차 창피할 만큼 구식이 되어 24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실감 나게 했다. 날을 받아 놓으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딸만 하나라 평생 시어머니가 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
[충북일보] 항공정비(MRO) 산업 육성을 위해 조성 중인 청주국제공항 인근 에어로폴리스 개발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 충북도는 에어로폴리스 1·2·3지구를 묶어 항공산업 혁신성장 클러스터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19일 충북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과 북이면에 에어로폴리스를 조성하고 있다. 1지구는 13만2천231㎡(4만평) 규모로 조성 공사가 완료됐다. 경자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3개 필지 중 2개가 헬기 정비업체에 분양됐다. 2019년 10월 도와 투자협약을 맺은 이들 업체는 조만간 착공할 예정이다. 충북경자청은 남은 산업용지에 관련 업체 유치하기 위한 공모를 준비하고 있다. 2지구는 올해 준공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면적은 40만9천917㎡(12.4만평)이다. 이주자 택지 조성도 마친 상태다. 이곳은 1지구와 연계해 항공정비 산업을 육성할 클러스터로 꾸며진다. 항공정비와 부품제조 기업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충북경자청은 기업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입주 의사를 밝힌 관련 업체는 1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지구에는 119항공정비실도 건립된다. 2022년 3월 도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소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청주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차량을 들이받은 뒤 카페로 돌진한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청주상당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A(60대)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6일 밤 9시 30분께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다가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뒤 카페로 돌진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이날 A씨는 용암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차량을 운전하다가 주차된 차량 3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후 사고 현장을 이탈한 A씨는 약 1㎞ 운전하다가 차량 4대를 추가로 들이받고 인근 카페로 돌진한 뒤 멈춰 섰다. 이 사고로 카페 출입문과 가구 등이 파손됐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경찰이 음주 측정을 진행한 결과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91%로 면허 취소 기준(0.08%)을 훨씬 넘은 만취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경찰에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임성민기자
[충북일보] 오곡이 풍성한 추석이 다가왔다. 누구나 풍요로울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손을 잡아야 주어야 할 이웃이 많다. 이런 이웃을 위해 추석 연휴에도 나눔과 봉사를 말없이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가 있다. 30여년간 일상의 나눔을 이어오고 있는 최종길(48) LG에너지솔루션 오창2 업무지원팀 책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중학생때인 15세부터 일찌감치 나눔의 의미를 알고 몸소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최 책임은 "당시 롤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보육원에서 체험활동을 온 5살짜리 아이를 케어했던 적이 있다. 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쉬는 시간에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게 됐다"며 "당시에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5살 아이와의 만남 이후 그의 시선은 달라졌다고 한다. 성인이 돼 원료 공장에 입사했던 그는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단순히 돈만 후원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가 아이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와 손주 두 명이 사는 조손가정이었다. 당시 할머님을 설득해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이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