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이다. 원작은 아니지만 고흐의 작품을 가까이 접한 건 처음이다. 회오리치는 듯한 별무리와 은하수 부분에 시선이 멎는다. 엇비슷한 색감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여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붓 터치를 따라 호흡한다고 생각하니 이내 기운이 솟는다. '별이 빛나는 밤'에 그가 느꼈던 감각을 따라 여행하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딸이 뜬금없이 퍼즐을 사 가지고 온 것이다. 그림 조각이 천 개라는 말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딸에게 왜 하필 퍼즐이냐고 물었더니, 아무 생각 없이 어딘가에 몰두하고 싶단다. 딸의 나이 이제 스물세 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그즈음 나 또한 분주했고, 그 마음이 이해되어 더는 캐묻지 않았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깜깜하다. 퍼즐 조각이 자그마치 천 개이다. 거실 탁자에 조각들을 쏟아 놓으니 그 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딸은 마음을 다잡았는지 별무리에 손을 댄다. 색깔을 분리하더니 신기하게 한 조각 한 조각 살을 붙이듯 맞춰나간다. 곁에서 보고만 있던 나도 아랫부분 능선을 거들기 시작한다.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 비슷한 모녀는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그림 맞추기에 매달린다. 머리를 맞대고 고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딸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자신의 노트에 메모한 부분을 보여주며 읽어준다. 딸이 고흐를 좋아하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이은희 약력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 월간문학 등단, 2004년 제7회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2007년 제13회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2010년 제17회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12년 제17회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저서로,『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 에세이포레 편집위원,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중.
ⓒ 이은희
딸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재주가 있었다. 공부와 그림 중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공부에 전념하고자 재능과 멀어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지만, 부모인 내가 그의 재능을 살려주지 못한 양 미안한 감이 드는 건 왜일까.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 되지 않느냐고 실없이 주절거린다.
그림 맞추기를 시작한 지 사나흘 째인가 보다. 겨울 방학을 맞은 아들이 거실을 드나들며 그림을 유심히 보았다가 조각 맞추기를 거든다. 이윽고 남편도 보는 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는 듯 거들기 시작한다. 하루 또 하루를 더하며 별무리가 하나 둘 떠오르고, 집이 세워지고, 굽이진 능선이 너울거리며 그림이 완성되어 간다.
회오리치는 듯한 은하수 부분에선 진도가 나아가질 않는다. 엇비슷한 조각들이 상당했기에 나중에는 네 귀퉁이가 맞지 않는데도 억지로 끼여 놓고 하루를 마감한 적도 있다. 딸은 그 부분을 기막히게 발견하고 살 같은 조각들을 냉정히 떼어놓는다. 고흐의 천문적 상상력을 샅샅이 해부하는 과정도 좋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새롭게 깨닫는다. 퍼즐에서 마구잡이식 그림 맞추기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인생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퍼즐도 마찬가지이다. 시간과 공을 들여 그림의 원리를 알아야 조각의 네 귀퉁이가 딱 맞아떨어진다. 어찌 공짜 인생이 있으랴. 노력해도 제 뜻대로 얻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이 노력한 만큼 미미한 결과라도 따라온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대가가 돌아오지 않던가.
나 또한 마지막 그림 한 조각이 남았을 때 그 감정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니 조각 하나가 들어갈 빈 공간이 희열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동안의 노고에 보답이라도 해주는 양 기쁨이 넘쳤다.
돌아보니 모녀는 참으로 소소한 것에 몰두했다. 고흐란 예술가를 논하며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그림 맞추기를 완성해 갔다. 분주한 연말과 새해 첫 시작을 퍼즐 조각 한 장 두 장 맞추며 완성의 순간에 닿았던 것이다. 들떠 있던 마음도 자연스레 평정을 찾았고,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의 한마음 된 모습을 보았다.
천 개의 조각으로 완성된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을 바라보고 있다. 손수 작업하여 그런지 감회가 남다르다. 가족 모두가 참여한 유일무이한 작품이라는데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식구들은 이 작품을 액자로 벽에 걸어 두고두고 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