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에 까치가 날아와서 주위를 살피다가 재빨리 감을 쪼아본다. 감은 이내 흠집이 나고 만다. 까치란 놈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감을 쪼아서 입으로 삼킨다. 그러나 입으로 넘어가는 양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홍시가 되었다면 삼키기가 훨씬 쉬웠겠지만, 단감이니 쉬 물렁물렁해지지도 않는다. 이놈들은 혼자 먹기가 심심해서인지 아니면 굶고 있을 동무들을 생각해서인지 깍깍거리며 친구들을 불러들인다. 이내 서너 마리가 매달려서 한 잎이라도 더 먹으려는 듯 감 한 번 쪼아 먹고, 고개 돌려서 누가 잡으러 오지 않나 확인하고…. 그 모습이 재미있다.
화단에 감나무 두 그루 심은 게 20여 년 전인가 보다. 가을에 발갛게 익은 감도 따 먹고 바라보는 즐거움도 느끼기 위해서였다. 감나무에 정성을 많이 쏟았다. 거름이 될 만한 것은 모아 두었다가 봄에 나무 주변을 파고 묻어주고 가지치기도 해마다 해주었다. 땅도 좋고 애정으로 보살피니까 감나무는 병치레도 않고 생각 외로 잘 자라 주었다.
감이 달리던 첫해는 무척 신기했다. 아내는 서둘러 따자고 하는 것을 나는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아내는 그 일로 인해 며칠 토라지기는 했어도 내 뜻을 거스르지는 않았다.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빨갛게 매달린 감을 두고두고 볼 요량이었다. 은빛 이불로 온 세상을 뒤덮은 한겨울, 발가벗은 몸으로 몰아치는 삭풍을 이겨내고 빨간 홍시를 매달고 있는 처연한 모습을 바라보는 낭만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했다. 꿈과 이상은 항상 거리가 멀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내 꿈은 까치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겨울이어서 먹이가 부족해서일 게다. 이게 웬 떡이냐는 듯 패거리로 몰려와서 깍깍거리며 쪼아 먹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마치 먹을 것을 남겨 주어서 고맙다고 꽁지로 인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놈들 너희 먹으라고 남겨 놓은 것 아니니 그만 먹고 떠나지 못할까 하고 까치들을 쫓아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여름내 푸름을 자랑하던 식물들도 모두 눈 속에 파묻혀 편히 쉬고 있는 이 엄동설한에 어디 가서 먹이를 구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추위가 몰려오자 아내가 화단에 서 있는 감나무에 달린 몇 개 안 되는 감이지만 따달라고 한다. 올해는 감이 많이 달리지도 않았고 그나마도 자잘하다. 두 그루 사이좋게 서 있다가 친구를 잃은 안타까움이었을까. 아니면 무자비하게 가지를 잘라내고 그마저도 모자라 뿌리까지 캐내 버린 주인의 매몰찬 행동에 반기라도 든 것일까.
감나무가 크니까 햇볕이 잘 들지 않았다. 더구나 아파트에 가려 조금밖에 들지 않는 햇볕을 한 움큼이라도 더 받아보려고 한 고육지책임을 감나무는 어찌 몰랐을까. 나무가 크니까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도 만만찮았다. 우리 집 마당에 떨어지는 것이야 쓸어 담아서 버리면 그만이지만, 담 너머 앞집 울안으로 떨어진 잎을 치우려면 담을 넘어야 하고, 또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이웃 간에 싫어도 싫다 소리 안 하는 고마운 이웃이다. 가을에 감을 따서 한 바구니 건네 보지만 그동안의 미안한 마음이 어찌 그 알량한 감 몇 개로 갚을 수 있겠는가. 감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기로 마음속으로 결정했다. 감이 주렁주렁 달리는 것을 베어낸다는 것은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과도 같이 느껴졌다.
기왕에 시작한 감나무 제거 작업은 한 그루에 그치지 않고 나머지 한 그루에도 아픔을 주기에 이르렀다. 앞집 담 너머로 잎이 떨어질 소지가 있는 가지를 잘라내자 한쪽으로 기우는 듯한 기형이 되어버렸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웃자란 가지와 반대편 가지를 더 잘라내야 했다. 손질이 끝났을 무렵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게 볼품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그 대신 바닥에 있는 꽃들이 살아 숨 쉬는 듯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가지 잘라낸 첫해에는 감이 달리지 않더니 올해에는 몇 개 달려서 그나마 감나무 체면을 유지했다. 전에는 감이 달고 시원했었는데 올해에는 영 맛이 없다. 입맛이 변했나. 몇 개 따다가 그냥 두자고 했더니 웬일인지 이번에는 아내가 순순히 그러자고 한다.
남들이 보면 화단에 서 있는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으니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것으로 알리라. 그리고 꽤 운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맛이 없어 다 따지 않고 남겨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 감을 쪼아 먹으려고 아침이면 까치가 가끔 날아든다. 아직 들녘에 먹이가 많이 널려있어서 그런지 날아오는 까치도 드물고 전처럼 적극적이지도 않다.
길을 다니다 보면 빨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 감을 따지 않은 사람은 나처럼 맛이 없어서는 아닐 게다. 자연을 아끼고 동식물을 사랑하기에 추운 겨울에 야생 동물 양식하라고 남겨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