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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수필가·공인중개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시트러스 향이 풍기는 한 젊은이가 목례를 했다. 아파트입주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서로가 잘 모르는 사이인데도 반듯하게 인사하는 그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가 짧은 시간에 보인 행동에 '예'란 상대방을 위함인 줄 알았는데 본인의 위상도 한결 돋보이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15년 전쯤 큰 시누이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미수가 얼마 남지 않았던 시누이는 D 여고 출신으로 신교육을 받은 여성이다. 아래 사람인 내게 말을 내려 하지 않았고 우리 가족에게도 시어른으로서 사랑을 주셨다. 큰아들은 외무고시에 합격했고, 고르고 고른 E대를 나온 며느리를 보았다. 그런데 '잘난 자식은 나라의 자식'이라고 외국을 드나드는 아들이, 가끔 세계여행을 시켜 드렸으나 형편이 여의치 못한 둘째 아들과 사는 시누이의 방에는 온기가 없었다. 그러다 임종을 맞으신 거다. 큰아들은 이탈리아에서 근무하고 있어 일정을 조정하고 비행시간을 맞추느라 장례는 5일 장으로 늦어졌고, 빈소는 넓고 최신식인 장례식장에 모셔졌다. 로비에는 외무부 장관의 근조화환이 앞줄을 장식하고 유명 인사들이 줄을 이어 조문을 왔다. 생전에 봉사 정신이 투철했던 시누이를 위해 성당에서는 신부님께서 많은 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장엄한 미사를 집전해 주셨다. 그토록 거룩한 장례미사 예절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살을 에는 2월의 추위, 흩뿌리는 눈을 맞으며 묘역 일이 모두 끝나고 조문객과 상두꾼이 공원묘원 내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려는 때였다. 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식당은 가지 마세요."라고 손을 내 저으며 제지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식객이 50명이 되어야 예약을 할 수 있는데, 인원이 40여 명 밖에 안 되는데도 50명의 밥값을 내면 가능하다고 말했단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며 명석한 며느리가 말했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어도 그 정도는 알았지만, 잘난 사람 내외 앞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식당으로 가자고 해서 조문객과 시장기가 돌았던 상두꾼들은 모두 버스에 올랐다. 아마 그녀는 더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고 싶었으리라.

'큰일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버스는 식당을 찾아다니고, 그러는 중에 앉아있던 이들은 자기 집이 가까운 곳에서 내려 달라고 하여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유가족만 덜렁 남아 서먹한 얼굴을 서로 바라보다가 우리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문화가 다른 여러 나라를 다니던 조카며느리가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면 철판에 '치 치직 치르르' 기름을 두르고, 부침개를 부쳐 먹고 싶은 우리의 정서를 어찌 공감할 수 있으랴. 추위에 떨던 조문객과 노역을 한 이들에게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었으면 족했을 것을. 그날의 '예'는 유교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삼강오륜이나 순자의 예의범절, 성현들의 말씀과 바른생활 교과서에도 없는 '예'이었다. 생전 집에 온 손님을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시누이님이 그 일을 알기라도 했다면 칠성판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을 쳤으련만….

그날 선뜻 나서서 매듭짓지 못했던 일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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