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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수필가·공인중개사

지인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매물 중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있으면 알아보아 주어요. 금액은 상관없이…" 매수의뢰를 해 온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은 부동산 관계의 소식이 빠르고 물건을 보는 안목의 수준도 준선수급이어서 '무슨 정보가 있구나.'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조간신문 1면에 국토부장관이 '전국15개 첨단조성…그린벨트 역대 최대의 규모로 푼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린벨트>란 무질서한 도시 확산을 방지하고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지정해 놓은 구역이다. 토지의 형질변경, 분할 등 행위를 제한했는데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란다. 풀어 준다는 것은 재산가치의 회복으로 이에 해당하는 토지 소유자들은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이다. "어떤 바보가 자기 땅 밑으로 터널을 뚫게 하느냐?"라고. 몇 개월 전 치러진 당 대표 선거에서, 투기의혹으로 몰린 후보가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에게 되물은 말이다. 국토이용계획에 관한 법률을 조금 이라도 아는 이라면 아주 기초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혹간 힘(?)센 자들의 입김은 예정 고시된 도시계획 선을 비껴 지나가는 것은 보았지만, 직접 맞닿는 경우 예외적인 몇 조항을 제외하면 별 효용가치가 없다.

채근담에 '관 뚜껑을 덮을 때가 된 다음에야 재물의 무익함을 안다.'고 했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재물인 부동산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이고, 가장 통속적이며 철학적인 논리의 대상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금고에 얼마가 쌓여 있느냐.'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도 하며 때로는 행복의 촉매제로 생각하여서 기회만 있으면 편승하고 싶은 게 보통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린벨트하면 생각나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나이 70대 중반을 넘어선 여인으로 혼자 노력하여 대학공부를 마쳤을 만큼 부지런하고 생활력도 강했다. 속을 썩이는 남편을 건사하면서 어린자녀들을 돌보아 지금은 사회에서 각각 제몫을 하도록 키워냈다. 그런 와중에도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고 애를 쓰는 점이 무엇보다 가상했다. 나무랄 데 없었다. 단, 한 가지. <사후 약방문>을 행한 일 빼놓고는….

사람의 심사란 이상해서 가까운 사람에게 속의 말을 털어 놓지 못할 때가 있다. 그녀가 그랬다. 한번쯤 나에게 사전자문을 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그린벨트가 있었다는 것, 오래 소유했던 토지를 K정부 시절 처음으로 그린벨트가 해제되기 직전에 매도했다는 사실과 두 번의 토지를 사고 팔 때도 한마디 말이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논(沓)을 샀다고 하며 한번 보아 달라고 하여 시내를 벗어난 n읍을 갔다. 토지의 아래로 수로(水路)가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이건 아닌데' 그녀의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았지만, 이미 끝난 일이라 "내 땅에서 농사지어 먹는다 생각 하세요."라고 위로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갔다. 어디에선가 '고수의 투자처는 토지'라고 들었는지, 다시 온 그녀는 k면에 "조그만 밭(田)을 매입 했는데 한번 보아 주어요." 해서 그곳을 갔다. 그런데, '아뿔싸' 이건 또 무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위로 지나가는 수로를 그녀는 못 보았던가. 이러한 조건의 토지를 일부러 찾으려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녀는 지난번과 유사한 땅을 또 샀던 것이다. 민법전에 <토지 소유권의 범위>에서 토지의 소유권은 정당한 이익이 있는 범위 내에서 토지의 상하(上下)에 미친다. 라고 명시 되어있다. 그녀가 부동산에 관한 새로운 공부를 해 보려고 했던 도전 정신은 좋았으나 실전은 참패로 끝이 났다. 대체 그녀는 전생에 물과 어떤 깊은 인연이 있었을까. 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재운이 없다"고 할 수밖에….

그녀의 삼천여 펑 그린벨트는 물과 함께 흘러갔고 지금 그녀는 요양병원에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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