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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수필가·공인중개사

<신언서판>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선출했던 네 가지 표준의 사자성어 이다. 첫음절 신자는 신수를 말하는 것으로 겉을 보고 안을 짐작한다는 문자인데, 지금도 인재를 등용할 때나 일반인들의 생활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이 예지는 가끔 빗나간 적이 있었다.

컴퓨터를 배우던 때의 일이다. 창밖에 후드득 후드득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던 날, 옆자리의 그녀가 불쑥 핸드폰을 내밀며 보라고 했다. 폰에는 '창밖에 비가 오고 있어요. 내리는 빗방울만큼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보낸 문자에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답 글이 있었다. 나이 50이 가까운 여인이 소녀 같은 여린 감성으로 남편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머리에는 나비모양의 반짝이는 핀을 꼽고 손톱에는 화선지인양 여러 가지 색과 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손목에는 팔찌, 발목에는 고리모양의 발찌가 찰랑거렸다. 서로에게 익숙해 갈 무렵, 자기 집의 시세를 알아봐 달라고 하며 방문을 요청했다. 마음속으로 여인이 겉모습처럼 섬세한 솜씨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을 집안이 궁금했고, 이런 여성과 함께 사는 남자는 누구일까 알고도 싶었던 차였다.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겉볼안>이란 글자가 무참하게 깨져 버렸다.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은 언제 쓸었는지 모르게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뭇잎을 푹푹 밟으며, 현관문을 여니 집안 풍경은 회오리바람이 불고 간 것처럼 난장판이었다. 소파 위에는 빨아 놓은 것인지 빨래 감인지 옷이 널브러져 있었고, 식탁위에는 뿌리에 황토 흙이 밭에서 뽑아온 그대로 묻어 있는 마늘꾸러미가 올라 앉아 있었다. 의자 위에도 주절주절 살림이 놓여 있어 어디 한 곳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내심 '이 사람들은 밥을 어디서 먹을까' 묻고 싶었지만 말은 안했다. 날씨도 희끄무레 해서 어수선한 실내 분위기가 더 우중충해 보였다.

남편이 C대 교수라고 했는데, 그의 논문이나 연구서 한쪽 읽어 본적 없지만 '이러한 환경에서 제대로 연구가 될까' 하고 의아스러웠다. 겉을 보고 집안 살림도 새로 이사 온 집처럼 반들반들하고 오밀조밀하게 정돈 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이 결빙점에서 굳어버리 듯 멈춰버렸다. 하늘거리던 발목의 발찌가 더 이상 멋스럽게 보이지 않았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여인의 정갈함은 외양의 치장(治裝)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이다. 직면하는 순간마다 사람의 얼굴이나 행동이 같을 수는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겉과 안이 뒤집어지듯 돌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ㅊ일보> 2면에 '희망 얼굴' 란에 한 사람이 환하게 웃고 있다.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인물을 선정하여 소개하는 코너이다. 웃고 있는 그 사람은 C동 상가 번영회장이라는 직함도 있는데, 상인 뿐 아니라 시민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나와의 인연에서 그는 영화 <헐크> 의 주인공처럼 상황에 따라 변신하는 두 얼굴의 사람이었다. 오래전에 내게 매수의뢰를 해 왔을 적의 얼굴과 중개가 이루어져 수수료를 주지 않으려고 이런 핑계 저런 이유를 대며 애를 쓰던 얼굴은 완연하게 달랐다.

지난 해 여름, 무더운 날씨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쯤, 국회 청문회에서 <겉볼안>에 맞는 사람이 등장했다. 촌철살인과 같은 화법의 인물들이 기라성처럼 모여 있는 자리에서 얼굴은커녕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고, 질문자에게 답변하고 있었다. 관객은 포복절도를 하는데 배우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 희극, 간결하고 명쾌한 논리로 논쟁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은 오히려 질문자를 당황하게 하는 촌극을 빚어냈다. 내가 본 최고의 코미디 <겉볼안>이었다. 외양에서의 느낌처럼 당당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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