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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에 숨겨진 비밀’ - ② 문화 유산과 과학

천년의 세월 이겨낸 기적의 독창성

  • 웹출고시간2008.07.29 21:50:5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우리 민족에게 남겨진 수많은 문화유산에는 과학과 예술이라는 양면이 있다. 주 석굴암의 경우 우아한 예술품인 동시에 정교한 조형물로 꼽힌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물 못지않게 훌륭한 과학기술이 역사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흔히 문화유산에서 지나치기 쉬운 이음새나 매듭, 주춧돌, 기둥 하나하나가 선조들의 지혜와 과학이 숨겨져 있다. 아직까지도 풀기 힘든 문화유산의 과학적 신비가 남아있지만 선조들의 이 같은 전통이 온전한 형태의 문화유산을 지금까지 보존하게 한 힘이 되고 있다. 한국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온 조상들의 과학적 지혜를 살펴보자.

각연사 비로전

◇ 각연사

괴산 보배산, 칠보산, 덕가산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분지에 자리 잡은 각연사는 신라 법흥왕 때 유일대사(有一大師)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법흥왕 때 어느 대사가 쌍곡리에 절을 지으려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까마귀떼가 날아들어 자꾸 대패 밥과 나무 부스러기를 물고 어디론가 날아가더라는 것이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대사가 까마귀들을 따라가 보니 깊은 산골에 있는 연못에 나무조각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이에 나무조각이 떨어진 연못 속을 들여다보니 연못 안에 석불이 하나 있고 그로부터 광채가 퍼져 나왔다. 곧 절을 짓던 공사를 멈추고, 이곳 연못을 메워 그 자리에 절을 세우니 ‘연못 속에 부처가 있음을 깨달았다(覺有佛於淵中)’하여 각연사라 지었다고 한다.

조그마한 돌계단을 올라서면 옛 영화를 말하는 듯 여기저기 널려있는 석재들과 높다란 계단이 있고 그 위로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제126호)이 들어온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의 것으로, 네모난 돌로 쌓은 기단 위에 놓여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형태를 하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해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로, 앞면 3칸에는 모두 빗살문을 달아 출입하게 했고, 옆면 앞쪽에도 빗살문을 달았다.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이곳 다포계 양식에서 조상들의 과학적인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기와로 된 지붕은 무게가 매우 크기 때문에 기둥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어 지붕과 기둥 사이에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구조물이 있는데 이를 공포라 한다. 이 공포는 무게의 분산이라는 기능뿐 아니라 기둥으로부터 처마까지 시선흐름을 원활히 해주는 역할도 겸하고 있는데, 공포에는 여러 형태가 있고 그 중에 다포가 포함된다. 주심포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것에 비해 다포는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공포가 놓이기 때문에 주심포보다 더 화려하다. 이러한 형태는 고려후기부터 등장하게 된다.

대웅전 내부에는 원형이 잘 남아있는 장엄한 닫집이 있고, 그 아래 불상이 모셔져 있다.

각연사 비로전(위)과 비로자나불(아래)이 대웅전을 뒤로하고 우측으로 돌아서면 보리수 옆으로 비로전(지방유형문화재 제125호)이 있다.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법당으로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을 모시고 있다. 안에는 비로전의 주인인 비로자나불이 자리하고 있다. 산스크리트 말로 ‘태양’을 뜻하는 비로자나불은 불법으로 중생을 구한다고 전해지는 부처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비로전은 신라시대의 주춧돌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올렸으며, 기둥은 가벼운 배흘림으로 되어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여기서 배흘림이란 엔타시스 양식이라고도 불리는데 기둥의 중간이 배가 부르고 아래위로 가면서 점점 가늘어지게 만드는 방법으로 이는 구조의 안정과 착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사용됐다고 한다.

사찰의 설화와 관련된 연못은 이 비로전이 있는 곳이고, 연못 속의 돌부처가 바로 비로전 안에 모셔진 부처라 전해진다. 눈이 소복이 내린 겨울에 태양이 비로전을 비추고 있자면, 연못에서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나타난 돌부처를 연상케 한다.

각연사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계곡을 건너면 왼쪽으로 넓은 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아늑하게 둘러진 돌담장 안 기단위에 올려져 있는 거북이가 보인다. 이 귀부(지방유형문화재 제212호)는 현재 몸체인 비신(碑身)과 지붕에 얹어지는 이수가 사라져버려 없는 상태이다.

◇ 석굴암

천년동안 보존되어 온 경주 석굴암(국보 제24호)은 조상이 우리에게 남겨준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그렇지만 과학적인 면에서도 훌륭함을 발견할 수 있다. 석굴암의 자연 제습 효과를 이용한다면 농작물이나 곡물 등의 저장에도 커다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석굴암 본존불

석굴암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굴 사원으로 신라 경덕왕 때에 김대성이 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강암을 석굴 모양으로 쌓아 올려 그 위에 흙을 덮고 굴 가운데 흰 화강암에 조각한 석가여래 좌상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여러 불상이 있다. 간단하고도 기묘한 모양과 영묘함이 불교 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지난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석굴암은 자연석을 쓰지 않고 전체가 화강석으로 된 인조석굴이다. 돌로 바닥과 벽, 그리고 천공 모양의 둥근 천장을 쌓아 올렸다.

이처럼 장엄하고 정교하게 제작된 석굴암은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신라 예술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는 예술에 속한다. 그 구조와 설계, 전체와 부분의 조화, 율동과 선의 오붓한 아름다움, 풍염한 표현 등이 신라 예술의 으뜸임을 보여준다.

현재 알려져 있지 않은 수많은 조상들의 지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풀어야만 하는 과제다. 조상들은 우리에게 문화적 자산을 남겨주기보다는 그 지혜를 남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석굴암이 한동안 습기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석굴암의 조각상을 일본으로 반출하려고 획책했다. 이들의 음모를 눈치 챈 현지 관리가 석굴암 반출을 거절하자 총독 데라우치가 현지를 시찰하고 석굴암을 제자리에 두되 현지에서 보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때부터 석굴암의 수난이 시작됐다. 바닥과 천장 위로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천장과 방수를 대대적으로 재보수 했음에도 습기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됐으나 아직까지 석굴암의 습기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석굴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국제적 차원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과학적인 평가를 통해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한 원형 복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 첨성대

경주에는 삼국시대 한국 천문학의 상징인 첨성대(국보 제31호)가 있다.

647년에 세워진 이 석조 천문대는 지금 남아있는 가장 오랜 천문대 유물이다. 첨성대는 아름다운 곡선미를 지닌 우아한 모습으로 한국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꼽힌다.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들을 살펴보면 첨성대에서 천체관측 활동이 제도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천문학자들은 중국에서 천문학과 역학을 배웠지만 언제나 배우고 모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만의 천문학을 가지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첨성대는 그런 조상들의 노력에서 얻어진 귀중한 소산으로 첨성대와 같은 천문대는 당시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첨성대는 한국 고대 과학기술의 가장 뛰어난 유물이 된 것이다.


/ 기획취재팀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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