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동창이 밝았느냐'라는 시조가 실려 있었다.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저자로, 목가적이면서 권농(勸農)의 의미로 해석됐다. 남구만이 이 시조를 지은 동기는 완전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1689년 그는 숙종의 뜻을 거스르고 희빈장씨의 소생인 균(均)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그는 지금의 강원도 동해시로 유배됐다. 동해 사람들은 이때 그 유명한 '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내용의 시조가 지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남구만 사당이 남아 있는 경기도 용인시에서는 낙향했을 때 '동창이 밝았느냐'를 지었다고 주장, 역시 같은 내용의 시조비를 세웠다. 이와는 별개로 1920년대까지 창으로 불려진 내용은 요즘 교과서에 실린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동아일보 1929년 9월 29일자 시조 소개란에 실린 내용이다. '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질이 우지진다 / 소치는 아희놈은 상기아니 일엇느냐 / 뒷뫼에 사래 긴 밧흘 언제 갈려 하느니.' '노고지리'를 '노고질', '아이'를 '아희놈', '재 너머'를 '뒷뫼'로 표
괴산군 칠성면의 산막이 옛길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괴산군에 따르면 주말이면 평균 1천500~1만대의 승용차가 산막이 옛길을 찾고 있다. 따라서 이를 사람수로 따지면 주말평균 5천~1만명이 산악이 옛길을 찾고 있는 셈이 된다. 산막이 옛길은 칠성댐 건너편인 괴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칠성호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시작된다. 약 3㎞ 정도의 거리로, 옛길 끝은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 마을이 된다. 마치 영월 청령포를 연상시키는 산막이 마을에는 과거 분청사기 가마가 위치했고, 이를 굽던 도공들은 가마 옆에 산막을 치고 기거했다. 산막이라는 마을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따라서 댐 담수로 위치가 위로 올라오기는 했지만, 지금의 산막이 마을 옛길은 과거 도공들이 왕래하던 길이었다. 그 끝에 노수신(盧守愼·1515~1590) 적소(유배지)가 위치하고 있다. ◇고행의 상징 유배용어 장배, 위리안치, 절도안치, 본향안치, 적소, 귀양살이 등 유배 용어는 그 표현이 다소 어려운 면이 있다. 장배( 杖配)는 유배를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곤장을 맞고 떠나는 것을 말한다. 죄의 경중에 따라 60~100대형이 추가됐다. 위리안치(圍籬安置)는 거주지를 제한하기 위해
◇마곡사 찾아가는 길봄 경치가 아름다운 마곡사를 찾았다. 공주에서 예산 유구 방면으로 32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사곡면에 이르고, 면소재지를 조금 벗어나면 우측으로 지방도로 이다. 여기서 다시 우측으로 회전하여 9km 정도 가면 마곡사 주차장이다. 주차장 위쪽에는 새로 만든 상가단지와 식당들이 질서있게 조성되어 관광객을 맞이한다.주차장 위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오르면 새로 만든 일주문이 '태화산 마곡사'의 현판을 달고 서있다.일주문에서 옆 계곡 계류, 갈대들이 나무들과 어울려진 길을 오르면 조선 숙종 때 사람인 송상기의 "유마곡사기"를 생각나게 한다. "절은 고갯마루에 있고, 10여 리 길가에 푸른 시냇물과 횐 바위가 있어 저절로 눈이 트였다."이 절경의 노래 속에 태화산이 마곡사를 앉고 있다. ◇마곡사의 옛 이야기들흐르는 계곡 바위 골 따라온 햇살이 마곡사를 비춰 준다.마곡사는 백제 무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한다.자장율사가 불법을 성취하려고 당나라에 건너가 수도 중 문수보살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 등과 깨달음을 전수 받아 귀국하였다 한다.이에 선덕여왕이 전이백결(田二百結)을 하사하고 전국에 사찰자리를 물색하게 하여 명당자리를 찾아다니던 중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는 혼동되는 면이 있다. 한자가 둘의 차이점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고 있다. 누각 할 때의 '다락樓' 자는 마치 이층집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누각은 1층은 기둥만 세우고 2층에 마루를 깐 건축물로, 과거 관아에서 부속 건물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정자는 규모가 누각보다 작으면서 1층으로만 지어졌다. 과거 선비 개인의 피서나 음풍농월 장소로 주로 이용됐다. 누각과 정자는 다르면서 같은 점이 있다. 바로 벽과 문이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조선초기 문신 손순효(孫舜孝·1427∼1497)는 물재집에 '樓虛則能納萬景 心虛則能容衆物'이라는 문장을 남겼다. '누각은 비어 있어야 주변의 많은 경치를 불러들일 수 있고, 마음도 비워 있어야 여러 사물을 포용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취경(取景) 즉, 경치를 불러들이기 위해 누정(樓亭)에 벽과 문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는 '마음을 비워야 선행을 쌓을 수 있다'는 불교 선사상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청풍과 한벽루의 역사 충숙왕 4년(1317) 우리고장 청풍현 출신의 '청공'(淸恭) 스님이 왕의 스승(王師)이 됐다. 바로 한벽루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로, 이
조선 정조 때 간행된 '戶口總數'(호구총수·1789)는 당시 전국의 호구와 인구수를 꽤나 정확히 기재해 놓았다. 호구총수에 따르면 당시 전국의 총호수는 1백75만2천837가구, 총인구는 7백40만3천606명이었다. 이를 행정 단위별로 살펴보면, 한양 18만9천153명, 평양 10만7천592명, 의주 8만9천970명, 충주 8만7천331명, 전주 7만2천505명, 경주 7만1천956명으로, 충주가 전국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상주, 진주, 길주, 해주, 대구,양주, 강계, 성천, 나주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처럼 충주가 대읍(大邑)의 규모를 지녔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시 충주목이 관할하던 행정 면적은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일제강점기 직전까지 존재했던 지도를 보면 충주의 서쪽 경계는 지금의 음성 금왕, 맹동면 일부까지, 동쪽은 백두대간에까지 이르렀다. 이 때문에 충주의 인구 규모는 대동지지가 간행된 1861년(철종1)에도 청주목 인구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충주 인구는 9만7천명, 청주는 4만6천명이었던 것으로 고산자 김정호는 기록했다. 두번째 이유는 하항(河港) 목계나루의 번창에 있었다. ◇ 충주 조운(漕運)과 왜구 지방의 조
◇명부전의 목각상석종 부도에서 서쪽 끝에 자리한 명부전 목각상이 아름답다고 하여 이를 알현하기 위해 명부전으로 갔다. 명부전을 드니 새로 채색한 목각상이 있고 십여 년 전에 있었다는 시왕전에 열립하여 있었다는 작은 동자상은 보이지 않는다. 작은 동자들이 붓도 들고, 합장하며 서있던 작고 예뻤던 동자들, 댕기를 땋아 뒤로 늘이기도 하고, 쌍상투를 틀기도 하였다는 말을 듣고 찾아 갔으나 다른 곳에 보관 했는지 동자상이 보이지 않아 서운한 기분이 든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봉안한 경우는 지장전이라고 부르고, 시왕을 모신 경우는 시왕전이라 부른다. 시왕은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정하는 염라대왕을 비롯한 열 명의 왕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공간인 명부세계의 주존이므로 지장전을 명부전이라고 한다.◇시인 묵객의 대장각비 서쪽 명부전에서 다시 석종부도 위 숲길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가면 대장각기비가 서있다. 신륵사의 뛰어난 풍광 때문인지 문장가나 시인 묵객들이 드나들었다. 그 중 대장각 짓기를 발언한 이곡이 있었고 그 발언을 성취한 이곡의 아들 목은 이색이 있었다. 나웅대사 석종비 보다 4년 늦은 1387년 대장각기 비문을 이숭인이 짓고 권주가 해서로 비문을 썼다. 원래 이
달천의 한자 표기는 '達川'이다. 여기서 '달래강'이라는 이름도 파생된 것으로 여겨진다. 달천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수달(獺)이 많이 살아서'와 '물맛이 달아서' 등 두가지 설이 존재하고 있다. 옛부터 달천수계에 수달이 많이 살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은 토산조에서 당시 충주에서 많이 나는 것으로 철, 해송자(잣), 송이, 활석(일명 곱돌), 수달 등 5가지를 적었다. 후자에 대한 근거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함께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달천의 물맛에 대해 '본조(本朝)의 이행(李行)이 능히 물맛을 변별하는데, 달천 물을 제일이라 하여 마시기를 좋아하였다'(사진 참조)라고 적었다. 택리지는 충주목 조에서 '임진년에 명나라 장수가 달천을 지나다가 물맛을 보고 '(중국) 여산(廬山) 폭포의 물맛과 같다고 했다. 고을이 한강 상류에 있어서 물길로 오가기가 편리하므로 서울의 사대부들이 예부터 여기에 많이 살았다'라고 적었다. 이처럼 달천은 예로부터 물이 매우 맑았다. 그러나 청정수가 흐르던 달천은 1592년 피로 물들었다. 한국 전란사 중 가장 참혹한 패배가 이곳에서 일어났다. ◇신립은 왜 새재에 진을 치지 않았나 1592년 4월
◇대들보 없는 조사당 다층 석탑에서 극락전 좌측으로 돌아가면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이 서있다. 조사당에 나웅, 지공, 무학대사의 초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도난을 방지하기 위하여 영정을 다른 곳으로 옮겨 보관하고 지금은 그 영정을 사진으로 찍어 액자에 넣어 조사당에 모셨다.조사당은 대들보가 없는 팔작지붕으로 정면 1칸 측면 2칸의 아담하고 예쁜 건물로 조선 태조가 무학대사, 지공, 나웅화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었다 한다.정면에 띠살문늬, 분합문늬 6짝 문을 달아 벽체에 고정하고 측면 한 짝에 정자 문살 문을 달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3면에는 모두 벽을 둘렸다.내외 이출목 다포계 공포형식을 하고 내부를 우물반자로 장식한 통칸 구조를 한 건물 이다.장대석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가운데 기둥을 세우지 않아 대들보가 없다. 측면 간주에 의해서 그 위 대들보가 아닌 대량이 건너가 네 모서리의 추녀 끝을 받치는 재목을 만나 건물을 가구 하였다.조사당 앞에 향나무가 서있는데 600년의 수령으로 무학대사가 은사 나웅스님을 추모하여 심었다 한다. 이는 스승을 그리워하는 제자의 마음으로 후세 제자들의 지표가 되어 오늘도 향나무가 푸르게 서있다.◇조선 초기
인류의 에너지소비가 날로 증가함에 따라 지구는 자원고갈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 에너지 자원의 주종을 차지하고 있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의 경우 경제적으로 채굴이 가능한 매장량은 각각 40년, 230년, 65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또 화석연료의 사용에 따른 대기오염을 비롯한 환경문제는 인류의 성장잠재력을 가로 막고 있다.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지구환경문제와 자원에너지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세계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신재생에너지란 기존의 화석연료를 변환시켜 이용하거나 햇빛, 물, 지열, 강수, 생물 유기체 등을 포함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변환시켜 이용하는 에너지로 총 11개 분야가 지정(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용도·보급 촉진법 제2조)돼 있다.신재생에너지의 특징은 △연구개발에 의해 확보가 가능한 기술주도형 자원이다. △지구 온난화가스 발생의 85%가 화석연료 사용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환경친화적 자원이다. △항구적으로 재생 가능한 비고갈성 자원이다. △장기적인 선행투자와 정부지원이 필요한 공공성이 강한 미래에너지라는 점이 꼽히고 있다.특히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태양광산업은 여타 에너지보다 청정하며, 무한 재생가능한 미래의 에너지원
충북도내 시군 중 한시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최북단 단양이다. 단양문화원이 조사를 한 결과, 무려 130여수에 달하고 있다. 이들 한시의 대부분은 단양팔경 등 명승을 노래했다. 퇴계 이황, 추사 김정희 등의 작품이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흔치 않게 유배시를 남긴 인물도 있다. 정철(鄭澈·1536∼1593)과 더불어 조선 시가(詩歌)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다. 그는 85살 생애를 살면서 14년은 유배지, 19년은 은거지, 나머지 8년은 관직에 몸을 담았다. 윤선도는 이 기간중 세 차례의 유배와 두 차례의 이배(유배지를 옮김)를 당해야 했다. 고산은 이때 우리고장 단양을 지나며 '歇馬孔巖'(헐마공암)과 '죽령도중'(竹嶺道中) 등 두 편의 한시를 남겼다. ◇14년을 유배지에서 살다 윤선도는 1616년(광해군 8) 일개 성균관유생 신분으로 이이첨(李爾瞻)·유희분(柳希奮)의 죄상을 격렬하게 규탄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은 오늘날 피할 수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거리입니다. 그런데도 이이첨이 또한 감히 변명을 하고 있으니 신은 삼가 통분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시 이이첨은 일인지상의 최고 권력자였다
단양 도담삼봉(국가명승 제 44호)은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절경이다. 주변의 석회암지대는 하천과 지하수 등에 의해 모두 깎여나갔다. 지질학 용어로 용식(溶蝕) 현상이다. 반면 도담의 세 봉우리는 석회암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원추 모양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강 안에 '바위섬'(巖島)이 존재하는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도담삼봉의 이같은 명승성은 역사적으로 '에피소드 공간'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단색이 아닌 다원색이었다. ◇택리지도 장문으로 언급 이중환(李重煥·1690~1752)은 숙종~영조 연간을 산 인물이다. 그는 택리지에서 단양을 '들판은 없지만, 강과 시내, 바위와 골의 홀륭한 경치가 있다'(無十里野有江溪巖洞之勝世)라고 적었다. 또 '이담삼암'(二潭三巖)이라는 표현으로 단양 전체의 명승성을 함축했다. 이담은 2개의 못이라는 뜻으로 구담과 도담을, 3개의 바위를 의미하는 삼암은 상선암·중선암·하선암을 의미한다. 그는 도담삼봉에 대해 돌로 인위적으로 쌓았다는 뜻인 '석가산 같다'고 표현했다. '강물이 휘돌아 가면서 모여 깊고 넓다. 물 가운데 세 개의 돌봉우리가 각각 떨어져 한 줄로 선 것이 활줄같이 곧으며 쪼아서 새긴 것이 기이하
◇홍건적이 침입하다머리에 붉은 두건을 써 이름이 붙여진 홍건족은 고려를 노략질하기 위해 1차(1359년·공민왕8), 2차(1361년·공민왕 11) 등 두 차례에 걸쳐 한반도를 침입했다. 1차 때는 평안도 함종까지 진출했으나 고려군의 반격으로 퇴각했다. 2차 때는 10만여명의 대군이 침입했다. 공민왕은 개성의 마지막 방어선인 절령(일명 자비령·개성~평양 중간)이 돌파를 당하자 남쪽으로의 몽진(蒙塵)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몽진은 왕의 피난길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본래는 '먼지를 뒤집어 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공민왕 일행이 지금의 경기도 땅에 들어서자 우리고장 충주, 청주목사 등이 잇따라 알현했다. '분수원(焚修院) )에 이르니 안렴사 안종원 충주목사 박희(朴曦)가 와서 알현하고 드디어 영서역(迎曙驛 양주에 이르니 남경유수 최인원(崔仁遠), 청주 목사 김성갑(金成甲)이 와서 알현하였다.'- ◇충주를 경유하다 고려 수도인 개성은 공민왕이 이천현을 경유할 때 홍건적에게 완전히 함락됐다. 이때 천인공로할 만행이 저질러졌다. '우설(雨雪)이 내리는데 어가가 이천현에 이르니 어의가 젖어 얼어서 섶을 태워 스스로 따뜻하게 하였다. 이날에 적이 경성을 함락하고 유
[충북일보] 청주시가 이달 말까지 옛 청주병원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1일 밝혔다. 시는 현재 진행중인 옛 청주병원 건물 철거작업을 오는 25일까지 완료하고, 7월부터 본격적인 신청사 건립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시는 7월 이전까지 매장유산 정밀발굴 조사와 신청사 건립사업 시공사 선정 등을 추진키로 했다. 청주시의회에서 요구하던 의회동 위치 변경은 시의원들의 동의를 받아 기존 설계대로 공사할 예정이다. 당초 시의원들은 의회동이 신청사 본청이 될 건물의 뒤편에 자리잡고 있어 이를 좀 더 남측으로 이동·건립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시는 행정적 절차의 어려움을 들어 시의원들을 설득하고 원안대로 건물을 짓기로 했다. 다만 시청 본청 건물과 시의회 건물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든다는 것이 시의 계획이다. 본격적인 신청사 건립사업 공사가 7월부터 추진되면 시는 오는 2028년까지 신청사 건립사업을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 관계자는 "통합 청주시가 출범한 이래 오랜 염원이었던 통합 청주시청사 건립사업이 본궤도에 진입했다"며 "신속한 사업추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청주시 신청사는 상당구 상당로 155(북문로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오는 2026년 2월 실시 예정인 전국 신협 개별 이사장 선거를 앞두고 과열 혼탁 양상이 우려되자 신협중앙회 차원에서 불법선거 근절을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신협중앙회와 충북본부에 따르면 내년 2월 치러지는 신협별 이사장 선거는 오는 2029년 예정된 전국동시신협이사장 선거를 앞둔 마지막 개별 이사장 선거다. 충북도내의 경우 80여개 신협 중 40여개 신협의 이사장 임기가 내년 2월 중 만료된다. 이중 다수 후보자가 등록하는 신협은 경선을 치르게 돼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치열한 선거가 전망되면서 투표수 확보를 위한 조합원 가입과 출자금 대납 등 불법선거운동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신협 관계자 A씨는 "최근 조합원 가입을 유도하는 모집책을 통해 가입한 경우 또는 출자금 대납을 통해 조합원 가입을 했다는 이들의 제보가 늘고 있다"며 "먼저 가입 후 통장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입금하는 방식도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신용협동조합법에 따르면 조합원은 출자좌수에 관계없이 평등한 의결권과 선거권을 갖는다. 1인 1 투표제다. 다만 조합원 자격 유
[충북일보] 이영석(60) 충북예총 회장이 27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다. 이달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이영석 신임 충북예총 회장은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지는 만큼 더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쁜 마음으로 시작하고 있다"고 취임 소감을 전했다. 이영석 회장은 선거 공약으로 △예술인의 권익과 위상 정립 △창의성과 혁신을 위한 미래기반 구축 △충북예술의 글로벌 강화 △지속가능성과 통합적 비전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어느 한 가지부터가 아니라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만들어져야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먼저 "예총의 위상을 세우기 위한 뿌리 찾기 일환으로 70년사를 발간하고, 원로 예술인의 발자취를 후배예술인들이 바라보며 귀감을 삼을 수 있도록 명예의 전당격인 충북예술원을 설립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열악한 충북예총 재정현황 개선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자생력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지원금만에만 의존하지 않고 공모사업이나 지자체 위탁사업 등을 통해 수익사업까지 이어갈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자립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디지털시대속에 순수예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