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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에 숨겨진 비밀 ⑨유교문화의 특성

忠·孝 바탕으로 대의명분 강조한 '현실적 종교'

  • 웹출고시간2008.11.24 14:55:0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유교는 인간관계에 대한 공자 성현의 가르침이다. 유교와 유학이라는 말을 같은 개념으로 쓰고 있는데 유학은 공자의 학문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고 있다.

유학은 발달과정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담고 있는 선진유학과 분서갱유(焚書坑儒 ; 진나라시황제가 사상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농서 등을 제외한 각종 서적들을 불태우고 수 백명의 유생을 생매장한 사건) 이후 한나라가 세워지면서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채택해 분서갱유로 손실된 것들을 보건 하는 학문인 한당유학이 있고, 신유학으로 새롭게 철학적 기초를 다진 송명유학이 있다. 여기에는 불교와 대립되는 이념을 가진 성리학과 정주학, 주자학이 있고 또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양명학이 있다.

이번 기획취재에서는 유교문화의 개념을 살펴보고 우리 전통생활문화와 그 속에 녹아있는 유교에 대해 알아보자.

성년이 된 학생들이 다도예절을 배우며 성인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을 숙지하고 있다.

# 유교문화

유교(儒敎)는 중국 춘추시대 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이다. 공자가 기존에 내려오던 각종 문헌을 정리해 유교의 터전을 닦았다.

고대 주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본 공자는 주나라 이후의 문헌과 그 당시의 예법과 학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유교는 충(忠)과 효(孝)를 기본으로 각종 예법을 강조해 중국의 고대 봉건 국가의 사상이나 이념을 대성한 것이다.

유교는 대의명분을 중요하게 보는 현실적인 종교다. 형이상학적인 관념이나 개념보다 현실 사회에서 어떠한 제도나 예법이 옳은가를 가르치는 종교다.

여기서 중요한 경전은 사서삼경이다. 사서삼경의 대부분은 공자가 편찬했거나 공자의 어록이거나 혹은 공자 제자의 저서다.

유교는 고대의 훈고학적 유교를 거쳐 송나라 때 신유학과 도교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받아들여 주자와 정자에 의해 성리학으로 발전했다.

성리학은 한국으로 건너와 조선왕조의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는 등 한국에 큰 영향을 주었다. 명나라 때는 사변적인 성리학에 대한 반발로 왕양명에 의해 양명학이 등장했다. 양명학은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기 이전에 마음의 선천적인 앎의 능력인 양지(良知)를 강조했다. 조선 후기 북학파, 실학에 큰 영향을 주었고, 강화도를 중심으로 강화학파의 학문이기도 했다. 청나라에 이르러 객관적인 증거에 의한 실증적이고 귀납적인 연구를 강조하는 고증학이 크게 성행했다.


#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교문화

△ 동성동본간의 금혼

현재는 동성동본간의 결혼이 가능해졌다. 1999년 1월부터 효력을 상실(근친혼-8촌이내-이 아니면 혼인신고가 가능해짐). 2005년 개정된 민법에서도 동성동본 금혼 규정을 폐지(공포일자 3월 31일). 그러나 아직도 뿌리 깊은 유교 의식 속에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 가부장적 제도

이제는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집안의 가장은 남자이고 여자는 보조자로써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 높은 권력을 가진 남자로 인해 아내 폭력, 불평등 등이 남아있다. 남자가 집안의 경제를 책임져야 된다는 인식 속에 기러기 아빠, 직장 내에 과도한 스트레스동반으로 인한 과로사 등 많은 문제점이 남아있다.

△ 제사

유교를 믿는 집안에서는 아직도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는 것이 잘못 된 건 아니지만 너무 많은 제사로 인한 스트레스와 문제점들이 있다. 제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조절해야 될 필요성이 있다.

△ 남녀 성차별

가부장적제도로 인한 폐해로 남자가 여자보다 높은 권력과 직위를 가져야 된다는 편견 속에 많은 불평등이 존재한다. 남자가 가정을 책임져야 된다는 압박 속에 여자는 집에서 가정을 돌봐야 된다는 인식이 현대 사회에서도 아직 뿌리 깊게 남아 있다.

# 유교교육기관인 향교

향교는 고려·조선시대 유교교육을 위해 지방에 설립한 관학교육기관으로 '교궁' 또는 '재궁'이라고 했다. 수도를 제외한 각 지방에 관학이 설치된 것은 고려 이후로 1127년(인종 5)에 인종이 여러 주에 학교를 세우도록 조서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향교에 적극적인 유학교육의 면모가 나타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유교 국가를 표방한 조선왕조는 교화정책 가운데 근본적인 방법으로 지방민을 교육, 교화할 학교의 설립을 추진했다. 1392년(태조 1) 각 도의 안렴사에 명해 향교가 만들어지고, 또 잘 운영되는 정도를 가지고 지방관 평가의 기준을 삼는 등 강력한 진흥정책에 힘입어 성종 때는 모든 군·현에 향교가 설치됐다.

향교에는 유생들이 학문을 배우는 공간으로 강학장소인 명륜당이 맨 앞에 배치되고, 그 좌우로 지금 기숙사와 같이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동재와 서재가 마주하고 있다. 명륜당 뒤에는 공자와 선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례를 위한 대성전이 위치하고 대성전 좌우로 동무와 서무가 마주하고 있다. 명륜당, 동무, 서무 및 대성전 주위로 성현 제사와 유생 교육에 필요한 제반 업무를 처리하던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조선 중기 이후 향교는 점차 무력화돼 교육기관으로서 기능은 사림들이 중심이 돼 세운 사학인 서원이 거의 대치하게 됐고, 향교는 지방 양민들이 군역을 피역하는 장소로 전락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과거제도의 폐지와 함께 향교는 이름만 남게 되고 단지 문묘에 대한 제사만을 담당하게 됐다.

성년이 된 학생들이 다도예절을 배우며 성인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을 숙지하고 있다.

# 윤리와 도덕의 전당 '청주향교'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에 있는 청주향교. 옛날 교육기관이자 선비들이 강학을 하던 곳으로 현재는 전통문화를 복원해 인성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청주향교는 고려 때인 987년(고종 6) 양성산 아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태조 때 교육제도가 정비되면서 전국의 각 지방에 향교가 설치됐고 이 무렵 재정비되면서 규모를 새롭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양현당, 복지회관, 숭인관 등이 있다. 향교의 배치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외삼문과 서향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돼 있고, 내삼문을 기준으로 문묘 공간인 대성전(大聖殿)이 후면에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반 규모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로 전면 반 칸은 퇴칸으로 개방했고, 내부는 통간(通間)으로 해 신위를 모시고 있다.

좌우에는 동무(東?)와 서무(西?)가 있다. 동무는 1982년, 서무는 1981년 복원된 것이다. 명륜당(明倫堂)은 1638년에 세운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경내에 홍살문과 하마비, 그리고 향교중건에 기여한 공적비 4기가 있다.

1977년 12월 충북도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됐다가 1988년 9월 충북도유형문화재 제39호로 재분류됐다. 현재 향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청주향교는 현재 서예교실과 한문교실, 그리고 예절을 가르치는 명륜학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충효교실과 충효 백일장, 도의선양 강연회, 예절 및 의례 상담실, 선비문화를 체험하도록 하는 선비학당, 전통혼례장 등을 운영해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전국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인 하서(河西) 김인후(1510∼1560) 선생을 추모하는 전국한시백일장은 전국의 한시 동호인들로부터 많은 참여를 얻고 있다.

대회 참가자들에게 시제를 부여하고 운자를 넣은 7언율 한시를 지어 기량을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상으로는 장원과 차상, 차하를 나눈다.

특히 과거 사대부 자손들만 입교할 수 있었던 선비학당은 연간 4천여명이 다녀갈 수 있는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해 청주향교 면모의 일신을 더해주고 있다.

선비학당에서는 선비들의 거동의례와 예절교육, 사자소학 및 성독법을 익히고 다도와 국악을 배우도록 하는 등 사람으로서의 됨됨이와 품격을 향상시키도록 해 입소자들의 좋은 평을 얻고 있다.

/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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