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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택

송면초등학교 교장·동요작곡가

퇴근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밖은 여전히 환하다. 모든 교직원이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시각이지만 나는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학교에 남아 있다. 시곗바늘이 어느덧 저녁 6시가 훌쩍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데, 운동장 저쪽에서 아이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의 어린 시절은 많은 추억과 이야깃거리 중에서도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휙 집어 던지고는 마을 앞 개울로 달려가 멱을 감으며 놀았었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 고무신 수족관을 만들었고, 오래 숨 참기 잠수 놀이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어지고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서야 "얼른 들어와 밥 먹어라."라는 어머니의 외침에 하나둘씩 집으로 들어갔다.

그저 자연이 주는 대로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최고의 놀이였다. 때마다 바뀌는 계절에 따라 술래잡기, 멱감기, 자치기, 딱지치기, 썰매 타기 등 딱 맞는 놀이를 찾아서 정신없이 놀았다. 딱히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니느라 숙제하는 것도 잊고, 부모님께 혼나기도 했지만, 그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문서를 정리하느라 컴퓨터 화면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아서인지 머리가 살짝 지끈거리던 차였기에 창문을 열고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아이들 입이 모두 보라색이다. '무슨 물감을 칠했나?' 하고 곰곰이 들여다보니 오디를 따먹은 게다. 학년도 제각각인 예닐곱의 아이들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이번에는 삽을 들고 와서 화단을 파기 시작한다. "여, 우리 친구들, 안녕?" "어? 교장 선생님 왜 집에 안 가셨어요?"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어서. 그런데 우리 친구들은 무얼 하고 있나요?" "네. 꽃나무 심으려구요." 삽으로 땅을 파는 일에 열중이다. 땅을 파고 무언가를 심고 발로 꾹꾹 밟더니 삽을 집어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운동장으로 뛰어간다. "얘들아! 삽은 제자리에 가져다 두어야지…." 내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다시 돌아와 삽을 챙기는 아이는 없다. 그러더니 이내 편을 나누어 사다리 놀이를 시작한다. '허허 녀석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 늦게까지 학원을 돌다가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놀 수 있다는 것이 참 소중한 모습이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러했듯 맑은 공기와 햇빛이 잘 드는 자연 안에서 또래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맘껏 상상하면서 목청껏 소리치고 땀을 흠뻑 흘리면서 온몸으로 힘껏 뛰어노는 일이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본능이며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놀 때가 가장 행복하다. 잘 노는 아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하며 사회성과 관계성도 발달한다.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 상상력도 풍부해진다. 특히 요즘 우리 아이들을 잘 노는 아이들로 키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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