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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지금 사는 집은 순전히 나의 설계로 만든 집이다. 지붕은 뾰족하고 거실의 천장은 높아야 하며 창문도 통유리로 아침에 일어나면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오면 싶었다. 마당에는 나무를 심고 그 밑에서는 야생화들이 계절마다 바투 피어나는 모습도 상상했다. 집 앞쪽으로는 넓고 긴 발코니를 만들고 발코니 밑에는 연못을 파서 비단잉어와 수생식물들이 하늘하늘 노니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또 그렸다.

이 집을 사서 이사를 온 게 큰아이가 돌을 막 지났을 때이니 벌써 35년 전이다. 집은 안채와 바깥채로 마당은 넓은데 휑했다. 안채는 주인집이었고 바깥채는 두개의 방을 세로 놓았다. 그렇게 10년여가 흐른 뒤 우리는 바깥채를 헐어 버렸다. 세를 놓아 수입을 기대 했지만 수입은 고사하고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더 많았다. 집이 허름해서인지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로 세입자로 들어왔다. 그러니 방값은커녕 전기세 수도세도 못내는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바깥채를 헐고 황토로 된 넓은 마당으로 10년을 더 살다 지금의 집을 짓게 되었다.

어린 시절,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남의 집에 세를 얻어 살았던 우리 집은 이사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품팔이로 끼니를 해결하고 나면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 학비는 언제나 빚을 얻어 해결했다. 그러니 어린 나이였음에도 집이 있는 친구를 부러워 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을 하고 우리 부부는 비록 작은 읍내였지만 5년 만에 집을 장만했으니 얼마나 억척같이 살았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언제였던가. 전라도 어느 마을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고택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 뒤로 우거진 대나무 숲이 버티고 섰고, 마당에는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연못이 자리했다. 연못 속에는 파란 하늘이 뿌듯이 담겨 주변의 풀빛과 함께 어울려 물빛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대청마무에 한참을 앉아 하늘과 연못과 뜰 안을 감상하던 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배산임수(背山臨水), 뒤로는 나무가 우거진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시원한 물이 흐르는 집터, 우리 조상들이 이르던 명당자리다. 여름이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선풍기가 필요 없고, 겨울이면 또 그 산이 바람을 막아줘 따뜻하니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집터에 바위가 있으면 그 바위도 함께 집의 구조물이 되어 그 자리에서 집의 일부분이 되었다. 자연은 정복이 아닌 자연의 품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조상들의 자연친화 사상이 만들어 낸 지혜의 결과였다.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집을 지으면 둘레에 나무를 심고 마당에는 연못을 만들어 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보리라 다짐 했던 것이. 그렇게 고대하던 집이 생기도 드디어 상상속의 집을 토해 냈다. 비록 뒤로 산은 없지만 계절마다 피어나나는 꽃나무들과 야생화를 참참이 심었다. 작은 연못에는 금붕어를 풀어 놓고 수생 식물들도 심어 물고기들이 충분히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집을 둘러 싼 담은 낮게 만들어 지나는 이들이 정원의 꽃들을 관상하게 했다. 대문도 누구나 쉽게 열고 닫게 열쇠가 없는 걸쇠만 걸어 두었다. 배산임수는 못되더라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나만의 소박한 꿈이 담긴 '집'이니 이것이야말로 명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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