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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겨울이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봄기운이 남녘부터 서서히 북상하고 있다. 지리산 품에 살포시 안긴 전남 구례도 우리나라에서 봄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지는 지역중 하나다. 봄내음 물씬한 구례시가지를 벗어나 경남 남해쪽으로 방향을 틀면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지 화개장터 못미쳐 토지면이라는 곳이 있다. 이 곳에는 운조루(雲鳥樓)라는 고즈넉한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영조때 낙안군수 유이주 공이 지었다하며 고택의 이름은 중국 동진시대 도연명 시인의 '귀거래사'에서 따왔다고 한다. 풀이하자면 '구름위를 나는 새가 사는 집'이라는 멋스럽고 시적인 운치를 담고있다. 그래서인지 지리산과 수백년을 정겹게 이어온 고택은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연상시킬 만큼 몽환적이다. 운조루는 얘깃거리도 많은 고택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운조루는 명당에 속한다고 한다. 금환낙지(金環落地), 하늘에서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리는 형상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길지(佶地)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운조루의 유명세는 풍수지리적인 측면에 그치지 않는다. 운조류의 진가는 고택내 쌀뒤주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조루 뒤주가 유명한 것은 뒤주의 설치 목적에서 알 수 있다. 운조루 뒤주의 덮개에는 한자로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다른 사람, 즉 누구나 뒤주의 덮개를 열 수 있다는 의미다. 운조루를 만든 유이주 공은 흉년에 배곯는 백성이 있으면 언제든 와서 쌀을 퍼갈 수 있도록 뒤주를 고택내 남들 눈에 잘띄지 않는 곳에 설치했다. 뒤주의 크기는 두가마니 닷되로 쌀이 떨어지면 즉시 채우도록 했다고 한다. 배곯는 이를 위해 곡식을 기꺼이 내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가져가는 사람의 미안함과 부끄러움까지 배려한 것이다. 그래서 운저루 뒤주는 예부터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형으로 꼽혀왔다. 그런 심오한 철학까지 담은 것은 아니지만 나눔과 배려라는 차원에서 운조루의 쌀뒤주에 견줄만한 냉장고가 진천에 생겨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말 진천군 문백면 복합문화센터에는 백곡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자체 기금으로 마련한 냉장고가 설치됐다. 이 냉장고는 단순한 일반적인 냉장고가 아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이웃에 식료품을 나누는 사업의 일환으로 들여놓았다. 긴급하게 식품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별다는 절차없이 결식 위기를 해결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나눔과 배려의 냉장고' 다. 이 냉장고 설치를 주도한 백곡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누구나 기부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냉장고를 조성했다"며 "균형잡힌 영양섭취가 어려운 취약계층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를 계기로 이웃과 먹거리를 나누면서 지속가능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앞으로 진천 기초푸드뱅크의 주3회 기부식품을 토대로 주민이 직접 후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혀 나눔과 배려의 냉장고가 활성화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백곡면 지사협의 희망이자 바람이다. 진천의 '나눔과 배려 냉장고' 소식을 접하면서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춘풍을 만난듯 가볍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냉장고가 들불처럼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단순한 지원과 나눔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받는 수혜자의 마음과 입장을 배려하는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이 많지만 선뜻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체면과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런 탓이다. 때문에 이들이 주저하지 않고 선뜻 도움을 받은 뒤 다시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배려의 문화가 필요하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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