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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정말 그랬다. 그때는 왜 그리도 눈이 많이 내렸던지 한번 내리면 폭설 수준이었다.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겨울은 흰 눈에 대한 추억이 특별하다. 장지문 새로 들어오는 환한 빛에 화들짝 놀라 단칸방 문을 열면 마당은 이미 설국이다. 밤새 내린 도둑눈은 봉당에 벗어놓은 우리 가족의 신발까지 숨겨놓곤 했다. 흰둥이의 집도 눈 이불에 사라질 판이다. 제 집이 없어지건 말건 자발없는 흰둥이는 신이 나서 마당 이곳저곳을 겅중대며 뛰어다니기 바쁘다. 내가 눈을 치우는 아버지 뒤를 졸졸거리며 눈을 치우는 시늉을 하면 아버지는 추우니 방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신다. 그런데 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좁은 마당은 흰둥이가 뛰어 다니는 바람에 다져진 곳이 꽤 여러 곳이다. 아버지는 눈을 쓸던 빗자루를 들어 흰둥이를 쫓으려하지만 흰둥이는 그런 아버지의 속내를 알리 만무다. 아직 쓸지 않은 눈 위를 발랑대며 아버지와 술래잡기라도 할 냥으로 까불댄다.

사계절 중 겨울은 농부들에게는 평온이 깃드는 시간이다. 아낙들도 몇몇이 모여 따뜻한 아랫목에서 수다를 즐기고, 남정네들은 심심풀이로 화투놀이를 하며 흥뚱항뚱 춥고도 긴 겨울을 보낸다. 아버지도 종종 놀음을 하러 가곤 했는데 그 집은 우리 집과 지근거리에 있던 최씨 아저씨네 집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 놀음을 할 수 있게 방을 내어 주는 집들은 가난한 집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아마도 놀음에서 떼어주는 개평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 집에서 국수를 섞은 라면을 얻어먹곤 했는데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어쩌면 그 맛 때문에 아버지의 만류에도 극구 따라 갔을 것이다. 최씨 아저씨네 집과 우리 집은 번갈아 가며 놀음을 하는 장소였다. 최씨 아저씨에게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의 딸이 있었는데 우리는 친자매처럼 지냈다. 언제부터인가 그 집으로 놀음 꾼들이 매일 같이 드나들게 되자 그 집 딸은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곤 했다.

중리 아이들에게도 겨울이면 즐기는 놀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비료포대로 썰매를 타는 일이었다. 비료포대에 지푸라기를 단단히 욱여넣으면 돌부리나 뾰족한 나뭇가지에도 엉덩이를 지켜내는 훌륭한 썰매가 된다. 비료포대 썰매장은 삼신댕이라는 곳이었다. 우리는 눈이 내린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으로 올라갔다. 삼신댕이는 중리의 서쪽 낮은 산에 있던 무덤이었다. 그곳에서는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넓은 터에 자리 잡은 큰 무덤은 두기가 나란히 있어 썰매를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무덤이 누구의 무덤인지는 몰랐으나 관리는 잘 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무덤 앞에는 두 석인상이 근엄한 모습으로 서서 무덤의 주인을 단단히 지켜 주었다. 하지만 개구쟁이들이 무덤 위를 타고 내려 올 때면 석인상도 눈을 질끈 감고 묵인을 해 주는 듯 했다. 우리는 석인상이 있는 곳까지 미끄러져 내려갔다 다시 비료포대를 들고 무덤이 시작되는 산과 맞닿은 곳으로 올라가곤 했다. 겨울바람에 우리들의 얼굴은 발갛게 얼고, 손과 발은 시렸지만 하루해가 어찌 가는지도 몰랐다.

삼신댕이는 사실 중리 아이들에게는 겨울 뿐 아니라 여름에도 즐겨 가는 곳이었다. 무덤 주위에는 큰 나무들이 에둘러 있어 그곳에서 더위를 피해 놀곤 했다. 석인상으로 기어오르는 도마뱀을 잡았던 기억도 난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그곳을 올라 가 보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동네 개구쟁이들에게 놀이터가 되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은 시골 아이들도 모두 학교가 끝나면 학원가기 바쁘고 컴퓨터게임이라는 신세계의 놀이가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곳이 그 옛날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다는 것은 우리들만의 비밀이 되고 말았다. 세월은 흐르고, 그 세월에 사람도 흘러간다. 하지만 오래된 추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추억하는 사람의 가슴속에서 알짬으로 남아 이렇게 반짝이고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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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기업 돋보기 5.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국내 시장에 '콜라겐'이라는 이름 조차 생소하던 시절 장부식(60)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콜라겐에 푹 빠져버렸다. 장 대표가 처음 콜라겐을 접하게 된 건 첫 직장이었던 경기화학의 신사업 파견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생소한 사업분야였던 만큼 일본의 선진기업에 방문하게 된 장 대표는 콜라겐 제조과정을 보고 '푹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해당 분야의 첨단 기술이자 생명공학이 접목된 콜라겐 기술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였다. 회사에 기술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일주일에 5건 이상 작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장 대표는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으로 선진 견학을 갔다. 정작 기술 유출을 우려해 공장 견학만 하루에 한 번 시켜주고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견학 때 눈으로 감각적인 치수로 재고 기억해 화장실에 앉아서 그 기억을 다시 복기했다"며 "나갈 때 짐 검사로 뺏길까봐 원문을 모두 쪼개서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가져온 만큼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견학 다녀온 지 2~3개월만에 기존 한 달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