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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집에 손님이 와요?", "아뇨. 어머니 뵈러 가려고요."

자주 가는 채소가게 주인 할머니가 친근하게 묻는다.

오늘도 좀 이른 시간에 내가 자주 가는 전통시장엘 갔다. 어머니를 뵈러 가기 위해 평일에 시간을 냈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위해 시장 골목을 누비며 한참을 기웃거렸다. 가게마다 물건을 진열하느라 분주하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오래된 사진첩을 뒤지듯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면서 기억을 되살려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먼저 어머니가 맛있게 드시는 인절미와 보리떡을 샀다. 그리고 비지장을 끓여 드릴까 해서 자주 들르는 두부집으로 향했다.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두부집 문이 닫혀 있었다. 비지 대신 무엇을 사야 하나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천천히 발길을 돌려 과일 가게를 지나고 반찬 가게와 만두집을 지나는데 알록달록한 콩을 바구니에 수북하게 담아 놓고, 두부와 장아찌 그리고 띄운 비지를 팔고 있는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난 너무 반가워서 반색을 하며 비지를 집어 들었다. 뭔가 큰일을 해낸 사람처럼 마음이 뿌듯하고 흡족하기까지 했다. 더불어 장바구니도 든든하고 묵직해졌다. 어머니에게 서둘러 갈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번에는 채소가게에 들렀다. 시장 골목에 펼쳐진 푸룻푸룻 신선한 채소 이파리를 보자 봄이 성큼 곁에 다가온 것 같았다. 주인 할머니가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다. 유채가 눈에 들어왔다. 부드럽고 연하게 보였다. 그 옆에 있는 봄동도 아담하고 노오란 고갱이가 고소해 보였다. 그래서 주인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유채와 봄동 중에 어느 것이 더 연하고 부드러운지. 그러자 주인 할머니는 유채가 지금 한창 부드럽고 맛있을 때라며 지금이 한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한철이라는 말에 유채를 한 봉지 샀다. 주인 할머니는 유채를 덤으로 더 넣어주며 누가 먹을 건데 부드러운 걸 찾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드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인 할머니는 어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셨느냐고 물었다. 곧 구순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주인 할머니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내가 고마워요! 내가 다 고맙네! 요즘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거시기로 보내는 세상이잖어." 주인 할머니는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더했다. 고맙다는 말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오히려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파하고 양파를 더 사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물미역도 샀다. 장바구니가 불룩해졌다. 어느새 마음도 따뜻해졌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주인 할머니가 봄동을 한 봉지 가득 담아 장바구니에 넣어주며 어머니한테 잘 다녀오라고 고맙다고 하셨다. 죄송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주인 할머니의 고맙다는 온유한 말에 나의 몸과 마음도 온화해졌다.

고맙다는 말은 마법의 말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말이라 그렇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제자가 카톡 메시지를 보내온 일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시간을 잘 보내고 있나요? 전 선생님을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로 시작하는 안부였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합격한 것도 선생님 덕분이라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순간 몸이 따뜻해지며 내가 더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는 농구를 좋아하며 늘 농구공을 안고 다녔다. 성격이 밝아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결정적인 일이 있을 때는 어려움을 겪곤 했다. 지난해에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쓰며 힘들어했고, 면접시험 준비를 하며 또 힘겨운 실랑이를 했다. 무섭다는 말을 하며 도와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같이 자기소개서를 썼고, 면접시험 준비도 했다. 늦은 시간까지 준비를 하며 긴장과 걱정을 했던 제자가 합격을 했다. 제자는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바로 고맙다는 연락을 했다. 선생님 덕분에 합격을 했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덕분에 고맙다'는 말이 환한 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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