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어디서 온 누구여? 이쁘게 생겼네" "어머님. 저 어머님 며느리잖아요. 왜 절 몰라보셔유?" "별일이네. 우리 며느리는 벌써 갔슈…." 오늘도 96세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몰라본 체 언제 놓을지 모르는 생명의 끈을 꼭 잡고 있다. 며느리는 24세에 시집와서 고희의 나이가 되도록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평…
할인판매 마지막 날이라 마트가 북적거렸다. 사람이 많아 계산대에서 20분이나 기다렸는데, 물건을 계산하던 직원이 호박 봉지를 들고 이리저리 살핀다. 아무리 봐도 애호박에 가격표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계산원이 무전기를 든 아르바이트생을 불렀다. 호박을 들고 급히 식품 판매장으로 뛰어 내려간…
사방을 두루 살핀다. 아는 얼굴을 찾을 수가 없다. 깃발을 든 공연자들이 무대로 올라선다. 민속놀이가 시작되려나 보다. 올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자 조바심이 일어난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린다. 역시나 보이지 않는다. 내심 기대를 했건만, 정녕 한 명도 오지 않다니.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꺽쇠의 손…
1. 낙영산에서도명산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정상은 금방이다. 숨고르기 한 번 없이 단숨에 올라갈 수 있다. 정상은 아니지만 보기 좋은 바위가 있고, 정상보다 널찍하고, 잘 생긴 소나무가 있는 곳이 있다. 전망도 좋다. 북쪽으로 숲 사이에 도명산이 희끗희끗 얼굴을 내밀고, 동으로 미륵산성으로 내려가…
당신을 꺾어야 하는 내 마음은 아릿하기만 합니다. 그처럼 예쁘지만 않아도, 분홍빛 고운 옷만 차려입지 않았어도 사람들 눈에 쉬 띄지 않으련만, 당신의 고상함은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당신을 탐하러 다가오는 사람에게도 환한 미소로 맞이하는 당신을 멀리서도 쉬 알아볼 수 있답니다.…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출근하려던 둘째 딸이 현관에서 투덜대는 소리가 들린다. 아끼던 제 우산이 망가졌다는 거다. 보나마나 엄마가 고장 냈을 거라며 입이 뾰로통하다. 하긴 색깔이 화사해서 눈에 띄어 몇 번 쓰고 나간 기억이 있으니 발뺌은 못하겠다. 우산을 살펴보니 우산살 끝과 천 매듭이 하나 풀어…
청보리가 무성하게 익어갈 무렵 내 나이 여덟 살 되던 해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해 많은 사람이 여름 피난을 멀리 떠나는 사람도 많았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은 동네 앞쪽 들판에 사태 밑이라는 고샅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때는 공동묘지였던 곳인데 후미진 골짜기에 절벽을 이용하여 옆으로 몇 날 며…
몸이 아파 며칠 집안일을 놓았다고 당장 저녁 찬거리가 마땅치 않다. 냉장고 문을 여니 시든 애호박과 가지, 누렇게 변한 두부와 어묵이 눈에 띈다. 오래되어 상한 것을 버리고 채소 통을 정리하는데, 한쪽 구석에 노란 머리가 탱글탱글한 콩나물이 보인다. 더러는 수분이 빠져 말라비틀어진 것도 있지만, 아쉬운…
단비가 오달지게 내렸다. 출근하자마자 경비실로 달려간다. 혹여 간밤에 내린 비에 섭슬렸을까 녀석의 안부가 궁금해서다. 화단 귀퉁이에 오종종 피어 즐거움을 주며 나의 감각을 일깨운 제비꽃이다. 요즘 출, 퇴근 시 녀석들과 눈도장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열아홉 소녀 같아 자꾸…
올봄 집 근처 공원을 지나다 모과꽃을 처음 보았다. 모과 열매는 많이 보았지만, 꽃이 핀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나 보다. 혹시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더라도 알지 못하고 무심히 스쳤을지도 모른다. 그날도 '모과나무'라는 이름표가 없었다면 못난이 열매가 달릴 모과나무 꽃이라고는 어디 상상이나 하겠는가. 첫…
어서 용왕제가 끝났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한낱 욕심이다.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사람이다. 불심(佛心)이 돈독한 신자들은 심신을 가다듬고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데 염치없는 이 사람은 용왕제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저들이 보기에는 측은하기만 할 거다. 전…
봄비가 개고 하늘은 유리구슬처럼 맑다. 봉분에 새로 입힌 잔디가 파랗게 돋았다. 보기 좋아 마음이 잔디처럼 포근해진다. 마주 보이는 뾰족한 산봉우리가 잘 손질한 붓끝을 닮았다. 그래서 문필봉이라 한다. 문필봉을 마주하는 곳은 명당이다. 이런 곳에 조상을 모시면 문필가가 나온다고 한다. 여기가 바로 부…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한 달 동안 실버 아파트에서 보낸 적이 있다. 55세 이상만 입주할 수 있는 실버 아파트에 잠시 입주하게 해주어 미국 여행길에 신세 진 J 여인이 서울에 왔다. 그녀도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마지막으로 고국의 여행길에 오른 셈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봄을 만끽하고 싶어 때를 맞추어 왔다고…
불 꺼진 딸애의 방문을 여니 이불은 침대바닥에 떨어져 있고 딸애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잠들어 있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이불을 끌어다 덮어 줘도 모르고 잔다. 옆에 데리고 잘 때도 이불을 차내더니 혼자 자도 이불 차내는 버릇은 여전하다. 그래도 혼자 자는 모습이 기특해 한참을 서 있다 나왔다. 딸애는 고…
화암사는 소리로 먼저 나그네를 반긴다. 청아한 계곡 물소리와 풍경 소리가 산사로 안내한다. 산사로 오르는 길은 번뇌가 끼어들 틈 없는 자연의 길이다. 돌에 걸려 넘어질까, 벼랑 밑 바위에 낀 푸른 이끼에 미끄러질까 조심하다 보면, 절집은 보이지 않으나 먼 데서 풍경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느린 걸…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서북으로 173km나 떨어져 있다. 뭍이라면 그만큼 휴전선 북쪽인 셈이다. 2071톤급 하모니플라워호는 우리를 태우고 바다를 가르며 북으로 달린다. 정원 568명인 대형 여객선은 한산하지도 북적이지도 않아서 좋았다. 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가슴이 시리다. 그래도 갑판 기운은 상쾌…
전에는 승용차가 없어도 느긋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 지금처럼 바쁘지도 않았었다. 퇴근 후에 동료와 안주 없는 술이나마 한 잔 마시고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해도 시간에 쫓기거나 불편을 느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주로 승용차를 타고 다니니 '퇴근 후에 소주 한 잔'은 쉬 꺼낼 수 있…
햇볕이 몹시 뜨거운 여름이었다. 수박 한 통을 사 들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녀 집을 찾았다. 애써 태연한 듯 반기는 그녀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몰라보게 여윈 그녀의 얼굴은 이미 병색이 깊었다. 그녀가 마음을 비우고 산사로 떠나기 전, 날 만나길 원했다. 그간 써 놓은 최종 원고를 넘겨주었다. 말도 안 되게…
내가 처녀 시절 엘비스 플리스리가 주연한 '블루 하와이'란 영화가 있었다. 그 시절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엘비스는 어린아이부터 어른에게까지 인기 절정이었다. 블루 하와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와이를 배경으로 엘비스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장면이 가득했다. 그 무렵 나는 서울에서 근무…
어머니가 고구마를 드신다. 고구마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아주 맛있게 드시더니 다 넘기기도 전에 고구마가 또 입으로 들어간다. 달달한 호박 고구마가 어머니 입에도 꿀맛인가 보다. 고구마도 유행을 타는지 요즘은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 자색고구마 등, 고구마 종류도 여러 가지다. 고구마 농사가 잘되었…
모처럼 카랑카랑한 날씨이다. 난 동면에 든 개구리처럼 꼼짝하기 싫은데 남편은 여행을 가자고 한다. 추운 날씨에 강바람까지 불면 얼굴은 어김없이 발작을 일으킬 게 뻔하다. 마치 식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피부에 두드러기가 돋아 약간의 통증과 가려움이 일어난다. 그러니 어찌 마음 놓고 콧바람을 쐬러 가겠…
초인종이 울렸다. 분명 두 딸과 막내아들 목소리가 현관문 밖에서 잠시 들린다 싶었는데 의아했다. 평소처럼 비빌 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면 될 것을 무슨 일인가 했다. 문을 연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이들의 멋쩍은 웃음이 이상하다 싶은 찰라, 큰딸 품에 꼭 안겨 눈만 빠끔히 내민 흰털의 어린 강아지 한…
요즘 어디를 가든 장사가 안 된다고 야단들이다. 재래시장은 더욱 그렇다. 재래시장은 춥고 불편하다. 손에 주저리주저리 물건을 들고 다니면서 구매해야 한다. 또 대형할인점보다 진열해 놓은 물건도 볼품이 적다. 나는 설 전 아내에게 제사용품을 육거리 재래시장에 가서 사면 더 싸다고 했다. 아내는 망설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까치설날이다. 설날이 되면 나는 생애 두 번째 계사년을 맞으니 두 살배기가 되는 셈이다. 이번 까치설날에는 두 살배기 아기 같은 정갈한 마음으로 만두를 빚어야겠다. 딸, 며느리, 아들과 둘러 앉아 지난해의 과오와 새해의 소망을 함께 싸서 하얗고 정갈하게 빚어야겠다. 대문에 붙여 악귀…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연일 영하 10도를 밑돌고 있다. 도심 속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썰매장이 무심천 수영교 아래 개장되어 있었다.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 차에서 내려 그들 곁에서 넋을 잃고 바라본다. 이렇게 추운 날 춥지 않은 양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하여 추억 속의 즐거운 미…
[충북일보] 항공정비(MRO) 산업 육성을 위해 조성 중인 청주국제공항 인근 에어로폴리스 개발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 충북도는 에어로폴리스 1·2·3지구를 묶어 항공산업 혁신성장 클러스터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19일 충북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과 북이면에 에어로폴리스를 조성하고 있다. 1지구는 13만2천231㎡(4만평) 규모로 조성 공사가 완료됐다. 경자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3개 필지 중 2개가 헬기 정비업체에 분양됐다. 2019년 10월 도와 투자협약을 맺은 이들 업체는 조만간 착공할 예정이다. 충북경자청은 남은 산업용지에 관련 업체 유치하기 위한 공모를 준비하고 있다. 2지구는 올해 준공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면적은 40만9천917㎡(12.4만평)이다. 이주자 택지 조성도 마친 상태다. 이곳은 1지구와 연계해 항공정비 산업을 육성할 클러스터로 꾸며진다. 항공정비와 부품제조 기업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충북경자청은 기업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입주 의사를 밝힌 관련 업체는 1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지구에는 119항공정비실도 건립된다. 2022년 3월 도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소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청주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차량을 들이받은 뒤 카페로 돌진한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청주상당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A(60대)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6일 밤 9시 30분께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다가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뒤 카페로 돌진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이날 A씨는 용암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차량을 운전하다가 주차된 차량 3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후 사고 현장을 이탈한 A씨는 약 1㎞ 운전하다가 차량 4대를 추가로 들이받고 인근 카페로 돌진한 뒤 멈춰 섰다. 이 사고로 카페 출입문과 가구 등이 파손됐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경찰이 음주 측정을 진행한 결과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91%로 면허 취소 기준(0.08%)을 훨씬 넘은 만취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경찰에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임성민기자
[충북일보] 오곡이 풍성한 추석이 다가왔다. 누구나 풍요로울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손을 잡아야 주어야 할 이웃이 많다. 이런 이웃을 위해 추석 연휴에도 나눔과 봉사를 말없이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가 있다. 30여년간 일상의 나눔을 이어오고 있는 최종길(48) LG에너지솔루션 오창2 업무지원팀 책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중학생때인 15세부터 일찌감치 나눔의 의미를 알고 몸소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최 책임은 "당시 롤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보육원에서 체험활동을 온 5살짜리 아이를 케어했던 적이 있다. 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쉬는 시간에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게 됐다"며 "당시에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5살 아이와의 만남 이후 그의 시선은 달라졌다고 한다. 성인이 돼 원료 공장에 입사했던 그는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단순히 돈만 후원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가 아이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와 손주 두 명이 사는 조손가정이었다. 당시 할머님을 설득해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이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