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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6.02 15:36:4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몸이 아파 며칠 집안일을 놓았다고 당장 저녁 찬거리가 마땅치 않다. 냉장고 문을 여니 시든 애호박과 가지, 누렇게 변한 두부와 어묵이 눈에 띈다. 오래되어 상한 것을 버리고 채소 통을 정리하는데, 한쪽 구석에 노란 머리가 탱글탱글한 콩나물이 보인다. 더러는 수분이 빠져 말라비틀어진 것도 있지만, 아쉬운 대로 먹을 만했다.

간단하게 콩나물밥이나 해 먹을 요량으로 씻어 소쿠리에 담아놓으니 콩나물밥을 하고도 남을 만큼 많았다. 남겨두면 또, 못 먹게 될 것 같아 반은 삶고 한주먹은 익은 김치를 넣어 시원하게 콩나물 김칫국을 끓이고, 조금 남은 콩나물은 소금을 넣고 간을 해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반찬이 없어 고민했는데 콩나물 무침과 콩나물 계란말이, 콩나물 김칫국만으로도 아주 먹음직스러운 밥상이 차려졌다. 며칠 밖에서 밥을 먹었던 남편도 역시 집 밥이 최고라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만만한 게 콩나물이라고 우리 집 냉장고에는 콩나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터줏대감인 양 냉장고를 지키다가 비빔밥이나 된장찌개, 라면을 끓일 때면 빠지지 않는 것도 콩나물이다.

박종희 약력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제3회 서울시음식문화개선 수필공모전 대상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 등 다수

△ 저서 '나와 너의 울림' '가리개'

△ 충북여성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 사무국장

△1인1책 펴내기 지도강사
ⓒ 박종희
씹을수록 구수하고 단맛이 나는 콩나물 무침으로 맛있게 저녁밥을 먹는데 며칠 전 다녀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쉽게 구할 수 있어 귀한 줄 모르고 먹는 콩나물이나, 늘 옆에 계시니 소중한 줄 모르고 사는 어머니의 삶이 비슷한 것 같다.

결혼한 지 25년이 되었지만,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일주일이나 머물다 가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식한테도 폐 끼치기 싫어하는 어머니는 아버지 통원치료 때문에 우리 집에 계시게 되었다.

일 년에 서너 번 친정을 가지만 친정어머니하고 같이 밥 먹고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언제나 손님처럼 친정어머니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고, 차 안이 비좁도록 싸주는 먹을거리를 당연한 듯이 받아오면서 어머니는 그렇게 평생 그 자리에 서 계실 줄만 알았다.

돌이켜보니 내 나이 먹는 것은 안타까워하면서 정작 어머니의 연세가 여든이나 되었다는 것은 실감하지 못했다. 대학 병원에 계시던 두 달과 퇴원하여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던 며칠 동안 나는 친정엄마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한 것 같다. 몸이 약한 나를 아직도 어린 자식 다루듯 하는 친정어머니가 내 어렸을 때의 어머니 그대로인 줄 알았는데, 어머니도 이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팔순의 노모였다.

목욕탕엘 가도 예전 같지 않았다. 당신 몸보다도 내 몸을 먼저 닦아주던 어머니가 아버지 병간호하느라 지치고 야위어 허깨비 같았다. 어머니가 올라선 저울의 눈금이 겨우 40킬로를 넘어서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렸다. 주변 어르신들이 관절염이 생겨 다리가 아프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남의 이야기인 양 우리 엄마는 평생 늙지 않고 곱게 사시는 줄 알았는데, 몇 년 사이에 부쩍 연로해진 모습을 보면서 자주 코끝이 시큰거렸다.

하긴 여든 살이 어디 적은 나이인가· 차를 타고 내릴 때에도 잡아 드려야 하고 어머니 혼자 계단을 오를 때면 불안했다. 작은 체구지만 단단하고 꼿꼿했던 어머니의 어깨가 구부정해졌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동생도 나도 잘해드리려고 애썼지만, 딸과 친정어머니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며칠 계시는 동안에 별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부리고 볼멘소리를 해 어머니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렸다.

나는 이제껏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은 친정어머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유일하게 내 속내를 다 내보일 수 있었던 사람도 친정어머니뿐이었다. 한 번씩 내가 쏘아붙일 때마다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셨을까· 결혼하고 시집가도 될 만한 손녀를 둔 중년의 딸이 골을 부리는 데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옛날에 내가 딸애만 한 나이었을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저 빙그레 웃으신다.

어떤 요리에 들어가도 그 음식 맛을 살려주는 콩나물처럼 자식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수십 년을 먹어도 질리지 않고 구수한 그 맛이 변하지 않은 콩나물처럼 어머니의 마음도 유행을 타지 않는가 보다.

값싸고 흔해 하찮게 생각하는 콩나물이 묵묵히 오랫동안 우리의 밥상을 지켜온 것처럼 친정어머니가 계시다는 것만으로 훈기가 돈다. 서민의 음식이면서도 사람들 간의 정이었던 콩나물처럼 어머니도 내 옆에 오래오래 계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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