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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는 자식을 먼저 보낸 중년의 어미가 넋을 잃고 서 있다. 슬픔이 너무 커서 눈물도 메말라 버렸음인가. 혼절할 듯 위태로운 눈빛으로 애끓는 빈 울음을 토해낸다. 물 한 모금 넘어가지 않는 어미는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숨은 쉬고 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다. 저토록 가슴 저미는 모정을 무엇으로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이 세상, 슬픔의 극한은 자식 잃은 부모의 것이다. 하늘이 내려앉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리라. 오죽했으면 단장의 슬픔이라 표현했겠는가. 중국의 시인묵객들은 사무친 슬픔을 말할 때 '원소(猿嘯)'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원숭이 울음을 뜻하는 것인데 이는 육조시대에 편찬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등장하는 원숭이 어미의 고사에서 생겨난 말이다. 사냥꾼에게 잡혀가는 새끼가 애닮아 원숭이조차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이 되는데 정을 나누는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랴.

성웅 이순신 또한 아들의 전사(戰死) 소식을 듣고 하늘을 원망했다고 한다. 그는 '난중일기'에서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하거늘 하늘이 어찌 이리 인자하지 못하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하며 자식 잃은 아비의 비통과 상심을 눈물로 적었다. 하물며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이 무디어질 것이며, 어찌 옛날이라고 더하고 지금이라고 덜하겠는가. 자식 잃은 슬픔에는 고금(古今)이 없다.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 왜 죽고 사는 일이 없었겠는가. 그 당시 키사고타미라는 여인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아들이 죽고 말았다. 그녀는 죽은 아들을 살려보겠다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부처님께 와서 애원하였다. 정신 나간 듯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그녀에게 "좋다! 지금 성 안으로 가서 겨자씨를 한 접시 모아 오너라. 단,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에서만 겨자씨를 얻어 와야 하느니라."했다.

그녀는 이 집 저 집을 돌며 겨자씨를 얻었으나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란 없었고, 그렇게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는 동안 스스로 이성을 회복하게 되었다. 문득 그녀는 "죽음이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언젠가는 닥쳐오는 필연적인 일이야!"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아무리 부처님인들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을 터이니 그것보다는 죽음의 근원을 알게 해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키사고타미의 아들을 살려 준다 해도 언젠가는 다시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누구에게나 죽음은 필연적이므로 죽음 그 자체보다는 아들의 죽음이 가져온 그녀의 고통만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이는 고뇌의 원인을 뽑아버리면 죽음은 두렵거나 아픈 것이 아니라 다만 죽음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은 살리는 것만이 결코 전지전능이 아니다. 월간 해인 편집장을 역임한 원철스님은 이 일화의 가르침을 "해결과 해소의 차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해결이라면,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은 해소에 해당된다. 따라서 참다운 고통의 해결은 근원적 원인을 해소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화가 또 있다. 부처님의 열반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아난존자가 슬퍼하면서 세상에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간청했을 때 "아난아!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아무리 사랑하는 것일지라도 반드시 변화하고 언젠가는 헤어지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태어난 모든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죽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부질없는 생각이다."라며 슬픔에 차 있는 제자를 위로해주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인연의 통로를 따라 누구나 죽음의 문으로 가야한다. 죽지 말았으면 하는 그 전제 자체가 터무니없고 잘못된 것이다. 전제가 잘못되면 고통의 해소도 없다. 우리 삶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이와 같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고통을 위로받기 위해 죽은 자를 살리고 싶은 모순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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