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양남현

국립괴산호국원 현충선양팀

앞으로 사흘이면 '상원'(上元)이라는 정월 대보름날이다.

이날은 오곡밥에 귀밝이술 한잔과 부럼을 깨며 1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예방하는 관습이 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대보름날은 아침나절부터 제기차기며 윷놀이, 부녀자들 널뛰기의 웃음소리가 모처럼 울타리 안에서 왁자해진다.

언덕에서는 저녁나절에 그동안 재미나게 날려왔던 마지막 연날리기를 한다.

이날은 높이 띄운 연의 연줄을 뚝 끊어 하늘 저 멀리 날려 보낸다.

이것은 온갖 못된 액(厄)을 떠나보낸다 해 연에다 붓글씨로 '송액천리'(送厄千里)라고 쓰기도 했다.

아무래도 대보름날 민속 축제의 클라이맥스는 동산 위의 달맞이로 새해의 복을 기원하며 달님에게 절하고, 아이들은 신바람 나는 쥐불놀이로 들녘이 떠들썩해진다.

쥐불놀이는 잡귀를 쫓아내는 동시에 논밭가의 잡초에 깃든 해충을 제거해 풍작을 이루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산불 등 화재 위험을 떠나 시골풍경보다 도시적인 형태로 살아가기에 삼가야겠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은 "대보름 때는 마을에서 생솔가지를 모아 산더미처럼 달집을 쌓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 나와서 달집에 불을 지펴 훨훨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떠오르는 쟁반같이 둥근 달님을 향해 머리 숙여 절하면서 소원을 빌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2005년부터 서울의 청계천이 다시 복원돼 매일 전국 각지에서 몰려 오는 관광객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정월 대보름 밤의 청계천 놋다리 밟기에 대해 극작가 이서구 선생은 다음처럼 말했다.

"옛날에는 내외법이 엄한 때이라 새댁이나 처녀들은 애당초 서울 길거리에는 얼씬도 못했다. 새댁은 가마 타고 친정에 가고 처녀는 외가댁 가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므로 일 년에 한 번 정월 대보름날 밤 나들이는 몹시 기다려졌다. 수표다리(水標橋)·효경다리(孝經橋)·장창골다리(長橋) 등 답교(踏橋)하는 이날은 야간 통행 금지가 해제되고 시민들이 다리로 몰려들었다. 이날 다리를 여러 개 건너면 일 년 내내 다리가 아프지 않는다는 풍속 때문이었다."

오늘날 대보름을 다룬 정감 넘치는 시는 별로 많지 않다.

우리의 민속 축제도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점차 퇴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병영이야말로 때묻지 않은 우리만의 정서를 간직한 곳인지도 모른다.

장병 여러분이 병영에서 보름달을 보며 전선의 대보름을 주제로 한편의 시를 쓴다면 참으로 훌륭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