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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7.22 16:22:3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윤기윤기자
"매에에에" 올해 들어 처음 듣는 말매미 소리다. 무슨 이유인지 올 여름 매미소리는 더디게 들렸다. 여름이면 밤잠을 설칠 정도로 시끄러운 매미소리지만 성하의 계절에는 역시 매미 울음이 들려야 제격이다. 오전 10시, 한 여름의 태양이 대지를 달구기 시작한다. 수곡남부상가 맞은편에 위치한 불지촌에는 뜨거운 밥이 익고, 돼지고기가 볶아지고 있다. 회원들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히지만, 표정은 밝기만 하다. 여기모인 사람들은 자비공덕 봉사회원들이다.

자비공덕회 고경자(73)회장은 "자비공덕회는 2004년 6월 법인정사에 계신 설우 스님의 뜻으로 만들어졌다. 나라에서 지원하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무료 점심봉사를 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70가구에 무려 9년째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백귀혜(53)총무는 "정부로부터 지원받지 못한 복지의 사각지대가 '차상위계층'이다. 처음에는 10가구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70여 가구로 늘어났다."라고 말한다. 현재 자비공덕회 봉사회원은 총 70여명.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이곳 '불지촌'은 법인정사의 한 신도가 기증한 건물이다. 박상순(55)회원은 "자신의 건물을 좋은 일에 쓰라며 신도가 기증했다. 그분의 아름다운 마음과 설우 스님의 뜻이 만들어낸 선물이다."라며 "우리가 배달하는 점심도시락은 생활이 어려운 차상위계층의 가정에 배달되지만, 몸이 불편하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거절하지 못해 가구 수가 늘어난 것."이라며 연신 흐르는 땀을 훔친다.

대형 선풍기 2대가 계속 돌아가도 소용없었다. 뜨거운 불판에서 솟구치는 열기로 '불지촌'은 한증막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메뉴는 흑미에 돼지고기와 가지무침, 김치 그리고 미역국이다. 11시쯤 음식 만들기가 완료되자, 대기하고 있던 차량 봉사자들이 배송지 명단과 음식을 비교해가며 도시락을 차량에 차곡차곡 싣는다.

ⓒ 윤기윤기자
봉사자들이 산남 주공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11시20분경. 한낮의 더위는 정점으로 향했다. 한 사람이 배달하는 몫은 보통 10가구 정도. 3인 1조로 20가구 정도 배달한다. 도시락이 담긴 바구니 무게는 성인 남자가 들어도 힘겨울 정도다. 하지만 매일 의례적으로 받다보니 고마운 마음도 엷어졌나보다. 어떤 수혜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점심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는 늦게 왔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회원들은 싫은 내색 없이 웃는 낯으로 "맛있게 드세요,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지요?"라고 살갑게 대한다. 김진희(55)회원은 "점심때가 되어 밥을 기다리는 노인들을 생각하면 내 부모가 생각나 안쓰럽다."라고 말한다.

ⓒ 윤기윤기자
11층 아파트에 사는 배민주(79)할머니는 점심 도시락이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장바구니에 얼른 담는다. 할머니는 "말할 수 없이 고맙지 뭐. 이 도시락 없으면 어떻게 바깥양반 병수발을 해. 바깥양반이 폐암 말기여. 병원음식보다 도시락이 맛있다고 매일 기다리니…그래서 기다렸다 챙겨가."라며 서둘러 떠난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박상순(55)봉사자는 "도시락이 며칠째 쌓여 있으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라며 "십중팔구 돌아가시거나, 갑자기 병원에 입원한 경우다."라고 말한다. 빈 도시락을 들고 불지촌에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회원들이 '수고했다'며 그들의 귀환을 반긴다.

길가의 플라타너스 나무에서는 여전히 매미가 울어댄다. 안도현 시인은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라고 하지 않던가. 진짜 여름이 뜨거운 이유는 따로 있다. 봉사자들이 피워 올린 뜨거운 열정(熱情)이 여름을 뜨겁게 달구어 놓은 것이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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