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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세명대학교 상담심리학과 부교수

조용히 홀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미라의 집에 오래전 집을 나가 살던 남동생 형철이 느닷없이 들이닥친다. 여자친구 무신의 손을 잡고서. 무신은 형철보다 스무 살은 많아 보였다. 형철은 누나 미라에게 무신을 자기 아내라 소개하고, 세 사람은 그렇게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다. 차분하게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 가던 미라의 삶에 갑자기 들어온 형철과 무신은 분명 불편하고 거슬리는 존재였으리라. 하지만 그토록 그리웠던 동생이기에 함께 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무신이 의외로 괜찮아 보였다. 그는 남매보다 거의 한 세대 가깝게 연장자임이 분명해 보였지만, 나이를 내세우지 않고 다소곳하고 깍듯했다. 미라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나무라거나 가르치지 않고 조용히 뒷받침해 준다. 미라도 점점 이런 무신과 맞추어 가는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는 듯했다.

그즈음이었다.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어보니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다. "너는 누구니?" 미라가 아무리 물어도 답이 없던 아이를 형철이 보고 반긴다. 무신의 전 결혼상대자가 그 이전 결혼에서 만난 아이, 그러니까 그냥 '아는 아이'인 것이다. 친부모가 결혼과 이혼, 만남과 이별을 여러 상대와 반복하는 동안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던 아이는, 그나마 자신을 예뻐해 주던 무신을 좇아 먼 길을 찾아왔다. 그런 아이를 내칠 수 없어 미라는 채현을 받아주기로 한다. 이후 형철이 제 하던 대로 훌쩍 집을 떠나 몇 날 며칠을 돌아오지 않은 후에도 미라와 무신, 채현은 함께 사는 '가족'이 되었다. 새로운 가족이 '탄생'한 것이다.

김태용 감독의 2006년작 <가족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된다. 처음 영화를 본 후 스무 해 가까이 지난 지금도 미라와 무신과 채현이 한 가족으로 묶이게 된 이 스토리는 짜릿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혈연으로도, 혹은 결혼이라는 제도 내에도 머물지 않은 낯선 타인, 이들 세 사람으로부터 우리가 열망하는 오래된 가족에 대한 믿음, 그 끈끈함이 느껴진다는 것에서 많은 생각이 든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을 비롯한 이른바 선진국들에서 공통으로 저출생과 만혼 혹은 비혼 경향이 나타난다. 통계청에 의하면 2023년 한국 사회 혼인 건수는 연간 19만4천 건으로 집계된다. 2018년에 25만8천 건으로 기록되었던 것에 비해 가파르게 하락선을 그리고 있다. 그에 반해 이혼율은 빠르게 증가한다. 결혼은 하지 않고, 맺어졌던 가정은 깨지고, 가족의 해체를 실시간으로 목도하고 있는 기분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이러한 위기감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에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약속하고, 급기야 어떤 시에서는 '프러포즈 명소' 설치 기획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생각은 어떨까. 법률소비자연맹이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년 10명 중 7명은 결혼을 위해선 경제적 독립이 필수라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나, 정부의 결혼·출산 장려를 목적으로 한 예산 지원이 결혼과 출산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10명 중 7명 꼴로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결혼과 출산에 돈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다. 가족과 관련된 이런저런 뉴스를 읽고 듣는 동안 영화 <가족의 탄생>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고무줄놀이하는 채현을 가만히 바라봐 주는 미라의 옆모습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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