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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3.03 15:21:27
  • 최종수정2024.03.03 15:21:27

박주영

시인·수필가

조팝꽃이 한창인 계절의 언덕받이에서 아지랑이 속삭임 포근한 봄 날이었다. 내가 운영했던 '부천 하나유치원' 소풍을 기억한다. 나의 생애 한 가운데에서 내 꿈을 늘 바라봐주시던 어머니는 외손자 돌보미로 소풍길에 따라나섰다.

원아들과 학부모를 태운 대형버스가 줄지어 수목원 입구에 들어섰다. 봄 길 초입에 핀 민들레가 노란 꽃잎을 뱉어내고 버들 강아지가 가느다란 눈망울을굴린다.

낮은 산자락에서는 머룻잎이이슬을털어내고, 물푸레나무가 낭창한 날개짓으로 뒤척인다.

"오리 꽥꽥 병아리 삐악삐악 참새 짹짹" 두 줄로 나란히 손 잡은 원아들이 선생님 구령에 맞춰 발걸음을 옮긴다. 노랑색 원복을 줄지어 입은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내 어머니는 그 동안 여유로운 풍류 한번 즐기지 못하고, 한가하게 노닥거릴 여유가 없으셨다. 그런 지난 오랜 세월 쉼 없는 삶을 겨우 내려놓고 가게로부터 도망치 듯 떠나오신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숲속의한마리 청솔모처럼 신선한 산소를 마시며 초록 눈을 번쩍 뜨신다.

길가에 홀로 선 모란은 낙화를 슬퍼하며 한 생애 꽃잎이 눈물되어 떨어지고, 보랏빛 라일락이 부드러운 봄 바람을 끌어당긴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이름없는 작은 꽃이파리 세어가며 넓은 초원위에 나는 행사 자리를 펼쳤다. 연초록 잎사귀들 웃음소리가 한 겹씩 쌓이는 이곳에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행사장을 꽉 채우고 있다.

첫번째 순서로 원장인 나는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안전하고 즐거운 소풍행사가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한 뒤, 포크댄스를 지도했다. 학부모들이 큰 원을 만들고 안쪽으로 원아들은 작은 원을 만든 다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모두 한 마음 되어 함빡 웃음짓는다.

앙증맞은 어린 꿈나무 꽃들이 발꿈치를 치켜 세운다. 청노루 눈처럼 맑은 빛으로 스피커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마치 백로가 하얀 날개를 펴고 햇살의 무등을 타고 노는 것 같다.

결정적 순간을 잡아내는 비디오 기사 발걸음이 바쁘다. 레크레이션 협회 회장님께서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행사 진행을 맡으셨다.

빨강 노랑 풍선을 하늘가에 띄우고 호르라기 소리에 맞춰

""핫 둘 핫 둘"

엄마 손을 잡고 목표물 돌아오기 게임을 진행한다. 노랑 팀 대표아이가 '아장아장' 느리게 걷자 그 아이 엄마가 '번쩍' 안고 뛰었다. 그러자 호르라기를 휙~ 불면서 "탈락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다음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 마음껏 춤을 추는 '차밍 디스코 대회' 시간이 돌아왔다. 원아와 학부모 대표들을 무대로 불러냈다. 그 자리에 어머니도 외손자 손을 잡고 나섰다. 굽은 등을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들썩이면서 신명나게 춤을 추시는 어머니…. 큰 맘 먹고 따라나선 딸내미 봄소풍길에서 한바탕 흥겨움의 끼를 발휘 하신다. 참석한 모든 팀에게 푸짐한 선물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돌아왔다. 봄바람이 푸른 산천을 휘돌아 각자 응어리진 숱한 삶의 사연들을 풀어놓는다. 여린 쑥 냄새 바람에 풍기는 푸른 초원위에 새싹들의 숨소리가 하늘가에 퍼져오른다. 허공의 벚꽃들이 벙글게 피어나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더욱 상쾌하게 들린다.

각자 정성껏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쳐놓았다. 어머니는 찰밥, 배추 것절이, 각종 나물과 과일 등을 푸짐하게 준비해오셨다. 늘 수고 많으신 교사들과 레크레이션강사, 사진, 비디오 기사님들과 같이 나눠 먹는 음식은 꿀 맛이었다.

다음은 게임시간이다. 노랑팀과 빨강팀으로 나뉜 학부모님들이 풍선을 발목에 메고 빠르게 걷는다. 원아들이 큰소리로 응원한다.

"노랑팀 이겨라 빨강팀 이겨라"

마음껏 외치는 소리가 하늘가에 메아리친다.

어머니도 외손자 손을 잡고 교감신경을 아름답게 자극시킨다. 평소 갇힌 마음을 활짝 열고 흥을 마음껏 펼치고있다. 학부모님들도 모처럼 도심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져 세상에 찌들은 두 귀를 바람 결에 씻어낸다. 산마루턱 은방울꽃들이 우리 모습을 바라보며 활짝 웃음꽃을 터트린다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눈물로 고칠 수 없는 병치레로 힘겨운 몸을 지탱하며 살으셨다. 평소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며 자신의 영역에만 몰두하고 꽃바람까지도 무심히 돌려보내며 살다가, 이곳에서 가슴에 낀 앙금을 지우신다. 그뿐인가!! 꽃 그늘에서 쉬는 호사까지 누리며 정신의 갈증을 해소시키고있다.

어머니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 말 하신다.

"오늘 참말로 재미나고만 잉~ 내가 따라오길 참 잘혔어, 오래 기억에 남을것 같어야"

부디 하루만이라도 지난 날 잡초같은 삶을 솎아내고 한가로운 여유를 마음껏 즐기시길 간절히 바랐다.

오늘 하루 다행히도 어머니의 친구같은 딸내미가 되어준거 같아 마음이 흐뭇하다. 내 기억속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으리라. '어머니 제발 쉬어가면서 일하셔요'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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